빈의 명실상부한 랜드마크, 성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에 갔다.
슈테판플라츠에서 바라본 슈테판대성당의 모습. 역시나 이곳도 공사중이다-_-;;

성 슈테판 대성당은 빈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 눈에도 잘 띈다. 중세전성기부터 오늘날까지 빈의 역사를 충실히 반영해서, 빈 시민은 대성당을 '슈테플'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왔다고 한다.

'슈테판'은 '스테파노'로 알려진 그리스도교 최초의 순교자(돌에 맞아 순교)의 독일식 발음. 영어로는 스티븐(Stephen), 스티브(Steve)라고 불리는 바로 그 인물의 이름을 따서 붙인 명칭이다.


성 슈테판 대성당은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고딕첨탑(137m의 남탑, Sudturm)을 가진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식 대성당이다. 사진에 보이는 까만색 건물이 남탑의 밑부분이다.
12세기 중엽에 완성됐다고 하는데, 공사기간이 무려 6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건물의 길이는 107m, 천장 높이가 39m에 이른다.

114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을 시작한 '성 슈테판 대성당'은 1258년 빈을 휩쓸었던 대화재로 전소되었다가 1263년 보헤미아 왕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한다. 1359년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헐어버리고 고딕양식으로 개축하였고, 1683년에는 터키군, 1945년에는 독일군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으나, 전쟁이 끝난후 복구를 시작해 대부분 옛모습을 되찾았다. 
이곳에서 모차르트의 결혼식(1782년)과 장례식(1791년)이 치러져서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반가운 건, 이곳은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새삼 감격적(?)이어서 '오디오가이드+남탑+북탑+카타콤' 모두를 볼 수 있는 All Inclusive 티켓을 끊어버렸다^^; 학생 12유로.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면서 성당 부분부분을 세심하게 보니, 엄청 유익했다. 그래서 자료를 차곡차곡 챙겼는데... 이런! 한국에 오니 모두 없어져있는 거였다~
그래서 더듬더듬 안좋은 기억력으로 이 글을 작성할 수밖에 없다. 내가 못살아. 흑흑


성 슈테판 대성당의 가고일(gargoyle).
지붕 처마에 고인 물을 내보내는 일종의 홈통으로, 물을 멀리 내보내기 위해 밖으로 돌출돼 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가고일을 보고, 그 그로테스크함에 기겁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고딕성당에서 가고일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유희로 자리잡았다. 이건 애니메이션 '슈발리에'의 영향이 크다^^



슈테판 성당 앞에는 쌍두마차(피아커 마차)들도 꽤나 많이 모여있다. 뭐 거의 집합소(?)인 듯.
교통수단으로서도 매력적이지만, 돌이 깔린 거리를 운치있게 구경하는 추억거리로도 이용할 만하다.
여성마부는 흔치 않은데... 멋졌다^^


그런데 결정적인 흠이 있었으니...
말똥냄새, 말 오줌냄새때문에, 악취가 장난 아니었다는 것!
슈테판 성당 안을 구경할 때도 열어놓은 문 때문에, 말로 인한 악취가 성당 안까지 스믈스믈 침투했었다.
처음엔 성당 지하에 있는 카타콤(지하묘지) 냄새인가?했는데... 이 놈들이 범인이었다! 경악스러운 스멜~-_-;;


이교도의 탑(Heidenturme). 정면에 있는 두개의 타워가 마치 이교도사원의 탑과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성당의 모습 중에서 로마네스크 양식이 남아있는 부분이다.
한쪽탑은 한창 공사중이었다. 여하튼 이 문을 통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성 슈테판 대성당은 현재 가톨릭 주교좌성당이다.
1469년에 빈은 독자적인 주교관구로 승격되었고, 이때 성 슈테판성당은 주교좌 성당, 즉 대성당이 되었다고 한다.



성당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제단.
대성당의 긴 네이브(nave 교회 한가운데의 중심 공간)가 인상적이다. 네이브의 길이는 107m, 높이는 39m라 한다. 
네이브를 받쳐주는 기둥은 천장에서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십자고상이 제단 바로 앞에 있지 않고 중간에 위치해 있는게 신기하다.


옆에서 본 십자고상. 아무 끈도 없이 무중력상태로 붕 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좀 더 가까이 가면 볼 수 있는 중앙제단의 모습. 굉장히 화려한 모습이다.
후기 고딕시대의 부챗살 모양의 반원통형 천장도 근사하다.


제단 반대편, 그러니까 출입구 쪽을 보면 1만개의 주석관으로 설치된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을 볼 수 있다.


멋없게시리, 오르간만 달랑 설치하는 일 절대 없다.
역시나 오르간 밑에도 천사상으로 장식해두고 있었다.
zoom으로 찍었더니 흐리게 나와버렸다 -_-;;



오르간이 하나 더 있었는데, 위의 오르간은 점검중인 것 같았다.
독일의 오르간 제작자 요한 에벨하르트 바를가가 1890년에 제작한 파이프오르간.
미사때마다 연주되는데, 굉장히 아름답다고 한다.
오디오가이드를 통해 잠깐 오르간소리를 감상했는데, 역시 실황으로 들어야 할 듯하다.

참고로, 제작자 바를가는 1863년 미국 보스턴 음악홀의 오르간을 제작한 명인으로도 잘 알려져있다고.


화려하게 조각된 기둥은 닫집을 쓰고 있는 조각상으로 장식돼 있었다.
대성당의 3랑식 네이브는 늘 어둠침침하다. 1900년경 종교개혁시대의 전위적인 건축가였던 빈출신의 아돌프 루스는 이러한 실내를 보고 "세계에서 가장 엄숙한 장소"라고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성 슈테판 대성당에 유달리 애정이 갔던 이유는 바로 이사람, 체코 브르노 출신의 조각가 안톤 필그람 때문이었다.
네이브의 왼쪽엔 사진에 보이는 설교단이 있는데, 바로 필그람이 16세기에 제작한 것이다.
계단 아래에 창문을 열고 반신을 내밀고 있는 사람이 보이는데, 바로 조각가 자신이다.
성당 강론대 아래에 자신의 모습을 조각하는...그 자의식이라니!


그 앞 왼쪽 벽에 있는 오르겔 좌대(Der Orgelfuß) 아래에도 역시 자신의 얼굴을 조각해놨다.
근대적 인간상이 보이는 느낌!
꼭 숨은 그림찾기 하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조각하는 것에 재미붙였나?^^
하긴 저 거대한 오르간대를 자신의 등에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 마냥 유쾌해보이는 것 같진 않지만.
컴퍼스와 저울을 손에 들고 있는 필그람.



조각 아래 자신의 이름 이니셜도 당당히 새겨 놓았다.
M.A.P. 1513(Meister Antonius Pilgram, 1513)




제단을 향해 왼쪽(북탑 밑)에 있는 잔베헤르고트(치통의 그리스도) 일명 '치통의 제왕' 상도 유명하다. 1410년데 제작된 조각인데,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그리스도의 표정이 치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이 반신상은 남을 조롱하는 사람에게 끔찍한 치통을 앓게 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그러나 잘못을 빌면 고통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제단 옆에는 1325년에 제작된 조각상, 딘스트 보텐-마돈나(Dienstboten madonna)가 있다.
이 성모상에도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다.
일명 '하녀들의 성모'라고 하는데, 마리아가 부당하게 도둑으로 몰렸던 하녀를 도와준 일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옛날 비엔나의 한 백작부인이 자기 보석함에 뒀던 비싼 진주목걸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천애고아인 어떤 아름다운 처녀 하녀를 도둑으로 몰아세었다.
이 때문에, 체포되어 감방으로 끌려갈 형편이었던 그녀는 백작부인 저택에 있는 예배철 뛰어들어가 성모상 앞에 꿇어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도와달라 간구하게 된다.
이 모습을 본 경찰관은 이 아가씨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고, 집안을 샅샅이 조사하게 되는데 결국 마구간을 담당하는 청년의 짐에서 진주목걸이가 발견된다.
청년은 자기범죄를 자백했고 이에 백작부인은 이 성모상을 슈테판성당에 기증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기적의 성모상'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하인과 하녀들이 소망을 기구하는 대상으로 존경을 받게 됐다고 한다.
원래는 총천연색의 조각상이었는데, 사람들이 하도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올려서, 촛불 그을림 때문에 까맣게 변했다고.


왼쪽 회랑에 끝에는 장엄한 비너 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제단이 있다. 
목제의 병풍처럼 생긴 제단장식품인데,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는 성모님과 아기 예수그리스도, 천상의 모후관을 받는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 쑹은, "너무 성상숭배같은 느낌이다"라고 비판했지만^^;


성모님과 아기예수 조각상이 꽤나 많이 보였다. 자료를 잃어버려서 이 성모자상의 이름 알 수 없다 ㅜㅜ


자애롭다기보다는 근엄한 성모 마리아.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과 딱 마주친 느낌^^


1481년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고딕스타일의 성수반(聖水盤, 성수 그릇)도 볼거리다.
재미있는 것은 성수반의 뚜껑은 세계2차대전의 전화로 인해 벽에서 떨어진 후 복구될때까지, 성수반의 뚜껑인지 몰랐다는 거다.
뚜껑은 16세기부터 복구되기 전까지 강론대의 종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성당안에는 석관도 많이 안치돼있었다.
이것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레데릭 3세(Frederick III, 1415~1493)의 대리석관이다.
프레데릭 대왕은 교황이 대관한 마지막 황제로, 그의 석관은 성 슈테판대성당 중앙제단 오른쪽 회랑끝에 위치해있었다.

프레데릭 대왕의 부탁으로 조각가 니콜라스 게르하르트 반 레이덴이 1467년부터 석관만드는 작업 시작했다고 하는데
1493년 프레데릭 3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정작 석관은 겨우 뚜껑부분만이 완성되어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프레데릭 대왕의 시신은 임시로 대공들의 묘에 안치되었다가 그로부터 20년후인 1513년에 비로소 안치될 수 있었다고.


또 다른 석관! 자료를 잃어버려 확신할 순 없지만^^;
기억상으론 합스부르크 왕가 아르츠흐두케 루돌프(Archduke Rudolf)4세와 부인 카테리네의 석관인 듯 싶다.
 
이로써, 얼추 성당 내부 구경을 다하게 된 쑹과 나는
이제 탑을 올라가보기로 했다.
먼저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만만한 북탑(Nordturm)부터!


북탑은 높이가 60미터에 이른다.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꼭대기의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전망대에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인 품메린(Die Pummerin, 큰 종이라는 의미)이 있다. 예전에 새벽기도시각을 알려주었고 한때는 통행금지 시각도 알려주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연말이나 새해 등 특별한 경우에만 울린다고 한다.
무게는 무려 20톤. 유럽에서 세번째로 크다고 한다.



1683년에 오스만투르크군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한 일명 '비엔나 전투'가 있었다.
이때 투르크군들이 비엔나에서 퇴각하면서 남기고 간 180개의 대포알을 녹여만든 것이 바로 이 품메린이다.
원형은 1711년, 현재의 것은 1957년에 만든 것이라고.


북탑 60.6m에서 내려다본 빈 시내.
빈 서쪽의 모습인데, 멀리 보티프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북탑에 올라가니 성 슈테판 대성당의 박공지붕(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이같은 타일무늬지붕은 교회를 장식하는 전통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오른쪽에 이교도의 탑이 보인다.
 

유명한 모자이크 지붕. 길이 65m, 넓이 35m의 십자가형의 성당지붕은 25만개의 선명한 청색과 금색타일로 모자이크되어있다.
지붕에 있는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문장과 비엔나 시의 문장, 1950년이라는 글자는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한 대성당의 큰 피해와 복구작업을 환기시켜준다.


북탑에서 바라본 남탑.
남탑은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직접 걸어서 올라가야한다!
저 곳을 오를 생각을 하니 이때부터 땀삐직...


아래를 내려다보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관광마차의 모습이 꼭 장난감같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바닥의 모습을 사진찍을 여유라도 가졌지만,
이때 우리 쑹은 고소공포증이 있다며, 빨리 내려가고싶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 ㅋ


북탑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은 뒤, 슈테판 대성당을 나섰다.
남탑, 카타콤까지 한번에 관람을 끝내고 싶었으나
슈테판 성당의 볼거리가 너무너무 무궁무진하다보니, 어느덧 문닫을 시간이 다됐다는 것. 시간상 관광이 불가능했다.
이미 남탑, 카타콤까지 볼 수 있는 표를 사놨는데! 어쩌나~했는데
다행히 표는 다음날도 유효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남탑(Sudturm) 오르기 대장정이 시작됐다^^;
남탑은 총 137m이지만 67m까지만 개방이 된다. 문제는 그 67m를 343개의 계단으로 직접 올라가야 된다는 것!


이렇게 좁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쉴새없이 올라가야한다.
오르다가 오르다가 어지럽고 지쳐도, 쉴수가 없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통로를 가로막고 있을수야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 계단을 기꺼이 오르는 모습이 놀라웠다.

험난한 일정(?)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고보니
인사하는 와중에 정도 싹트고...생각해보니 좋았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딱 마주쳤을때
"sorry"라고 얘기했더니, 답은 "with us"
미안한 것은 피차 마찬가지라는 말씀^^


그와중에 보게된 한국어 낙서.
남탑계단 올라가는 곳 벽에 새겨져있었다.
하긴 끝간데 없는 계단을 오르다보면 심심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낙서까지 해서야되겠어요? 윤춘식씨? -_-+

...여하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mind the steps"을 수차례 날려주면서 가다보니, 어느새 테라스에 도착!


그런데, 여기가 끝인줄 알았더니, 조금더 올라가야만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_-;;;
계단위에서 중간테라스에 있는 쑹을 찍은 사진^^



북탑에 있던 큰 종이 원래 남탑 중간 테라스에 있었나?
품메린 표지판이 세워져있었는데...독일어를 몰라서 읽기에는 실패 -_-;;
원통형 천장이 소박하지만 아름답다.


이곳에도 역시 '내사랑' 가고일이 있었다^^


성당안을 꾸미는 장식물이었을 건축조각품들이 바닥에 진열되어 있었다. 복원 안하나?;;


그리고 몇 계단을 올랐더니, 드디어 전망대에 도착했다!
좁은 전망대 안은 기념품 샵으로 꾸며져있었다.  


남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빈시내 북쪽모습.
멀리 도나우강까지 보고싶었으나...-_-;
날씨가 좋으면 모라비아(체코 동부)까지 내다보인다고 한다.

앞쪽에 있는 초록색 지붕이 성 슈테판 성당의 북탑 꼭대기.


이것은 비엔나 서쪽 모습.
호프부르크도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동쪽으로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기슭까지 보인다고 하나.... 보인다고 내가 아는 것도 아니고^^;;

여하튼 바로 다시 그 좁고 어두운 계단을 통해 내려가야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 곳은... 성당 지하묘지 카타콤(Katakomben).
정해진 시간에 가이드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인데, 직접 가보니 왜 개인적으로 갈 수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무섭기도 하지만, 꼭 미로같아서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을듯!

카타콤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한 컷도 소개할 수 없어 아쉽다.
상상하기로는 굉장히 끔찍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네온램프가 설최된 현대식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악취도 전혀없고 말이다.
1450년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단단히 밀봉된 구리로 만든 관들, 내장이 담긴 항아리 등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정돈 안된 유골들도 봤다. 격자로 된 창문이 있었는데 뒤편으로 산처럼 쌓여있는 해골, 유골들을 볼 수 있었던 것.
1679년에 빈에 대역병이 돌아서 유골 약 2천구를 아무렇게나 묻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시체들의 부패 때문에 성당안에는 악취가 대단해, 당시 상당기간 문을 열지 못하고 미사도드리지 못했다고 하니, 페스트의 참상이 어떠했을지 눈에 선하다.

합스부르크 왕가15개 무덤도 이 성당 카타콤에 안치돼 있고,  1953년부터는 빈의 대주교들의 시신도 이곳에서 보관한다고 한다.
카타콤 한번 다녀오면, 인생의 덧없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_-;;

'성 슈테판 대성당'의 홈페이지는 http://www.stephansdom.at

오스트리아
주소 해외여행지 유럽 동유럽
설명 유럽 중남부에 있는 산이 많고 육지로 둘러싸인 나라
상세보기

Trackback : 0 And Commen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