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꼽히는 '카를 대성당(Karlskirche)'에 가려면, 일단 카를스플라츠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된다.
이때, 금색의 해바라기 모양의 카를스플라츠 역사(Karlsplatz Stadtbahn-Pavillon)을 놓치지 말것!
1889년에 완성된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로, 19세기 말 빈의 도시 교통계획의 고문이 된 오토 바그너의 대표작이라 한다.
지척에 있는 카를 대성당과도 미학적으로 잘 어울린다.


카를스플라츠에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동상도 있었다.
낭만파시대의 독일 작곡가이지만, 음악가 생활은 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했었다. 묘지도 빈 중앙묘지에 있고...
빈 시내에 브람스의 동상이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일인 것이다.

근데 브람스 동상 앞에 널브러져있는 저 여인네는 누구일까?
좀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지만,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서 찍은 사진이기에, (혹시 불법일까봐) 여유롭게 살펴보질 못했다.


브람스 얼굴 클로즈업!
참 고집스러운 노인네처럼 보인다.
클라라와 낭만적인 플라토닉사랑을 한 청년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ㅎㅎ


뒤에 보이는 저 건물이 바로 카를 대성당이다.
돔과 두 기둥 때문에 꼭 이슬람사원처럼 보이지만, 가톨릭 성당이다. 그래서 별명이 '빈의 하기아 소피아(터키의 성 소피아사원)'이라고.
두기둥은 이슬람의 첨탑(미나레트)이 아니라, 신성로마제국의 트라야누스 기념주(이탈리아 로마 위치)를 모델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성당을 세운 주인공, 합스부르크가의 독일(신성로마)-오스트리아 황제인 카를 6세(Karl VI, 1685~1740)의 좌우명이었던 '결단과 용기'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툰다(둥근 지붕이 있는 원형건물)도 이슬람사원을 연상시키는데 이런 종류의 돔은 고대 기독교 건축물의 공통적인 특징이 아니었던가?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생각해 보아도 말이다. 


재밌는 건, 이슬람사원처럼 보이는 이 '카를대성당'이, 이슬람제국 오스만터키군을 격파(1683년)한 기념으로 신에게 감사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외에도 1713년에 빈을 휩쓸어 8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 전염병도 카를 대성당을 세운 계기가 되었다. 카를 6세가 전염병이 종식되기만 하면 성당을 짓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성당 정면 입구 위에는 페스트에 걸린 시민의 참상이 묘사되어 있었다.


카를대성당 내부 구경을 위해선 입장료를 내야한다. 학생은 4유로.
표를 판매하는 학생이 정말 예뻐서 몰카 찍었다(소심하게 옆모습만^^;)
파란색눈의 금발, 전형적인 게르만 미녀의 모습^^ 


오스트리아의 대작곡가 안톤 브루크너의 장례식도 이 곳에서 열린 듯.
입구에 브루크너를 기념하는 석판이 있었다. 저걸 영어로 번역하면, "In this church Anton Bruckner's body was solemnly blessed on October 14th, 1896, in the presence of Vienna's music world." 


드디어 내부입장. 빈의 바로크 전성기 건축물답게 무지무지 화려하다. 압도하는 아름다움.
바로크 최대의 건축가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가 설계를 맡았고, 역시 뛰어난 건축가였던 그의 아들 요제프 에마누엘이 건축을 감독했다고 한다. 1739년에 완성.


페스트 종식 기념으로 세워진 성당답게, 카를 대성당은 전염병을 막아주는 수호성인 카를로 보로메오(Carlo Borromeo)에게 봉헌됐다.
그런 이유에서, 중앙제단위에 성 카를로 보로메오가 신이 비추는 빛을 따라 승천하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십자고상이 안보여도 놀라지 말것. 그 밑에 조그맣게 있지 않은가 -_-;
(우리쑹은 "역시 가톨릭은 예수님 숭배보다는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성인숭배를 너무 한다"면서 애꿎은 나를 타박하곤 했지만...)


성 카를로 보로메오는 밀라노의 추기경이자 대주교였다. 1584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이탈리아 메디치가 출신이었고, 종교개혁에 맹렬히 반대하면서 가톨릭 내부개혁에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전염병을 막아주는 수호성인이 된 이유는, 1570~1576년 밀라노에서 전염병이 일어났을 때 그는 도망가는 대신 끝까지 남아서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전에도 그는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이 성당의 이름이 '카를 대성당'이 된 것도 그의 이름 '카를로'의 이름을 딴 것.


성당내부는 적갈색 대리석과 빛바랜 황금색으로 장식돼 있었다.
너무 화려해서 눈앞이 번쩍번쩍~


중앙 제단 위의 호화로운 금박장식과 꼭 손오공같이(?) 구름을 타고 오르는 보로메오 성인의 모습~ 경이롭다.

우리 쑹은 의외로 이런 바로크 성당에 확 꽂힌 모양이다. 나는 오히려 고딕성당이 좋은데...
좋다면서 연신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팍팍 찍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렇게 너무 화려한 성당은 별로다.
괜히 위화감 조성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성당에 오면, '가톨릭은 우리 계급과는 다른 이들이 생활하는 곳이구나'하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라곤 하지만...생각해보면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 어두운 곳, 비천한 곳,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셨던 그분의 생애를 돌이켜보면...흠.
처음 가톨릭에 입문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성당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멈칫하지 않겠는가?
  

카를대성당의 천장모습을 보면 확인할 수 있듯이 실내는 타원형이다.
저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싶었는데, 또 공사중이다!(하여튼 비수기에 여행하면 이게 안좋아 ㅠㅠ)
1725~1730년에 요한 미하일 로트마이어가 제작했다는데, 성 카를로 보로메오가 전염병을 막아달라고 성 삼위일체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묘사했다고 한다. 물론 볼 수 없었다. ㅠㅠ 프레스코화가 이 성당에서 제일 유명한데~


대신 부속예배당에 있는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밖에.
이것도 로트마이어의 작품이라고 한다.


부속 예배당이 여러개 있었다. 그렇게 '꿩대신 닭'으로 로트마이어의 작품 감상.
중앙제단 앞에 있던 둥글게 곡선이 진, 내진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도 로트마이어의 작품이라고 한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상도 보인다. 일명 성 모자상. 가톨릭교도가 아니라면, 굉장히 이교적으로 보일만한 모습이다.


설교대도 저렇게나 화려하다. 왼쪽에 있는 공사비계가 에러...-_-+


제단에서 출입구쪽을 보면,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운 오르간도 보인다.
오르간 회랑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도 로트마이어의 작품이라 한다.


어, 그런데 2층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공사중이니까 관람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여는 서비스인가?ㅋㅋ


그중 인상깊게 본 작품 몇몇.
제목이 Grablegungscorpus라는데...도대체 뜻이 뭔지?
참피나무로 175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빈에 사는 교수 Alfred Sammer박사의 소장품이라고.
여하튼 십자가에 내려진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듯. 꼭 관 안에 갇힌 것 같다.



후베르트 마르클(Hubert Markl)의 글이 벽을 장식하고 있던 묘한 느낌의 전시회.
이 작품은 예수님의 고통으로 가득한 성서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 알 수 없다.
그러고보니,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가리고 있던 것도 전시회작품의 일환인 것 같았다.
공사도 예술적으로 한다, 이건가?^^


그리고 카를대성당에서 마주한 최대 의문점 하나.
영어로 된 기도문을 하나 가져왔는데, 좀 읽어보니 이 사람, 합스부르크 왕가 최후의 황제인 '카를 1세(1881~1922)'였다.
아니, 시대착오도 유분수지, 왕정복고를 원하는가? 왕정시대를 그리워하는건가?
왜 이 사람을 '평화의 왕자'라고 떠받들며 기도문까지 만드는가? 역시 가톨릭은 보수?!


그의 생애까지 쭈욱 기술하고 있는 팸플릿...
카를 1세(헝가리 국왕으로서는 카롤리 4세)는 1차세계대전중인 1916년 오스트리아 황제 겸 헝가리 국왕이 됐다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멸망하자 헝가리 국왕 자리를 내놓았고 다음해 황제직에서도 폐위당한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왜 성당에?" 이 의문은 한국에서 자료를 찾던 중 풀렸으니,
그는 복자(福者, 죽은 사람의 덕행과 신앙을 증거하여 공경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하여 발표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성인 전단계)였던 것이다.


카를 1세에게 바치는 기도문.

카를 1세는 200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됐다. 교황은 그를 향해 "현대 정치인의 귀감"이라며 "1차 세계대전중 바티칸 평화노력을 받아들였고 전쟁을 혐오한 '평화의 친구'였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1차대전때 독가스 사용을 명령했고, 2번이나 복위를 시도해 유혈사태를 낳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복자품을 받을 만한 인물인가 아닌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여하튼, 빈 시내 유명한 대성당에 그를 기리고 그를 향한 기도문까지 비치돼있는 것을 보니
카를 1세는 오스트리아 내에서는 꽤나 기억되고 공경받는 것처럼 보였다.

홈페이지는 www.karlskirche.at

오스트리아
주소 해외여행지 유럽 동유럽
설명 유럽 중남부에 있는 산이 많고 육지로 둘러싸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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