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지구에서 허탕친 뒤...터덜터덜...
이제 저기 하늘위로 불쑥 솟아있는 '성 비투스 대성당'쪽으로
 즉 프라하 성지구(흐라트차니)로 가야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애매한 거리.
그렇다고 걸어가기에도 만만치 않았으나
산책삼아, 천천히 시내구경도 할겸 걸어가기로 했다.
블타바 강 가를 따라 쭈욱 걸어보기~



흐라트차니로 가기위해선 블타바 강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로 가기 직전
얀 플라흐 스퀘어(Jan Palach Square)를 구경했다.

이 곳의 이름이 얀 플라흐인 이유!
1968년 부브체크가 이끈 민주화운동 당시, 소련에 대해 저항하는 뜻으로
21세의 카를로바 대학교 철학과 학생 얀 파라흐가 바츨라프 광장 국립박물관 앞 계단에서 분신자살한 일이 있었다.
이 얀 파라흐를 기리기 위해 광장에 그의 이름을 붙인 듯.


그도 그럴 것이 광장 주변에 그가 다녔던 카를로바 대학교(영어로는 찰스대학교) 가 있기 때문!
왼쪽의 건물이 Faculty of Arts of Charles University bulding. 광장 동쪽 사이드에 있다.

광장 남쪽 사이드에 있는, 그 옆건물이 Academy of Arts, Architecture and Design. 즉 '프라하 응용미술 아카데미'이다.



프라하 응용미술 아케데미가 곁에 있는 만큼
얀 플라흐 스퀘어엔 요세프 마네스(Josef Mánes)의 동상이 있었다.
요세프 마네스(1820–1871)는 체코의 국민화가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얀 플라흐 스퀘어가 유명한 건
바로 이 건물, 루돌피눔(Rudolfinum)이 있기 때문이다.
체코 저축은행이 50주년 기념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외벽 굽이진 난간에 붙어있는 수많은 조각상이 정말 화려하다.
체코 신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의 대표주자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듯!
이 조각상들은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등의 음악가들과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다.

한편, 루돌피눔이라는 이름은 1889년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루돌프가 자살한 것을 애도해 붙인 것이라고 하는데
예술가의 집(Dum Umelku)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고.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여서 그런듯?
체코필 연주를 들어볼까했는데,
역시나 빈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정이 안맞다. 흑 ㅠㅠ


루돌피눔에는 또 19세기 체코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드보르작홀'도 있다.
그래서인지 역시나 루돌피눔 앞에 드보르작의 동상이 떡하니 있다.
드보르작(1841~1904)은 보헤미아 민족의 애환이 담긴 곡을 많이 작곡한 체코의 대표 작곡가 아닌가.
그의 동상이 이곳에 자리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리고, 블타바강을 건넜다.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카렐교.
어제 한번 카렐교로 건너봤기에 이번엔 카렐교 바로 옆에 있는 '마네스 교(Manesuv most)'로 건너봤다.
또 카렐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_-;



다리를 건너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보자면 마네스 다리가 훨 낫다. ㅋ
대신 카렐교는 보행자 전용 다리이지만
마네스 다리는 차가 씽씽 달리고...한켠에 밀려나 있는 인도도 좁다.



뭐 그래도 건너는 사람 자체가 적으니
유유자적하며 꽤나 여유있게 건넜다.


앗, 맞다.
마네스 교는 차 뿐 아니라 트램도 다닌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빨간하양 귀여운 트램이 보이시는가 ㅎㅎ
그러고보니 프라하에서는 트램을 한번도 못타봤네.  
빈에서 징하게 타서 그런가. 별로 타고싶지 않았다는...
게다가 프라하는 웬만하면 도보로 다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오, 고지가 바로 눈앞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프라하 성지구-흐라트차니~



드디어 말라 스트라나(소지구)에 도착.
이 계단을 오르면 흐라트차니로 갈 수 있다.

쑹과 나는 프라하 성 옆에 있는 성모마리아교회 로레타(Loreta)에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로레타에 가기 위해선 이 돌계단들을 올라야 한다 -_-+
오른쪽에 슈바르첸베르크 궁전의 스그라피토 기법 외벽이 보인다^^


이 계단의 이름은 라드니츠케(Radnicke schody).
뜻은 Town hall stairs.
무려 127개의 돌계단으로 이뤄져있다.
올라가다가 무릎 나가는 줄 알았다는 -,.-


영차영차~ 고지가 보인다. 어서 올라가자구!

왼쪽에 보이는 피자집의 향취가 독특해서
로레타 보고 내려오는 길에 먹자고 쑹이랑 약속했는데
다른 길로 내려오는 바람에, 결국 피자맛을 못봤당. 아쉽...



계단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왼쪽으로 올라가면 프라하 성으로 갈 수 있다.
오른쪽의 길은 네루도바(Nerudova)거리.



드디어 로레타 입구, 로레탄스케 광장에 도착!

로레타란 성스러운 집 '산타 카사(Santa casa)'를 의미하는데
원래의 집은 로레타라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 있다. 
바로 이 집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앞으로 예수가 탄생할 것임을 알려주었다고 전해진다.
웬 이탈리아? 성경속에서는 나자렛이라고 적혀있는데?? 
이유인즉슨 1278년에 이교도의 위협 때문에 천사들이 이 집을 나자렛에서 이탈리아의 로레타로 옮겼다나 어쨌다나?

1620년에 프로테스탄트가 패배한 이후 가톨릭 측이 이 전설을 크게 퍼뜨렸다고 한다.
또 가톨릭의 세력 확대를 위해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 로레타를 모방한 건물이 50채나 세워졌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이라고.
페르디난트 2세는 웅장한 디자인과 로레타에 대한 기적적인 이야기를 내세워
체코를 다시 가톨릭 국가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옥색지붕과 끝이 뾰족하게 세워진 첨탑이 인상적이다.

1694년에 덴마크 기술자인 페트르 나우만이 주조한 27개의 종이 저기 보이는 거대한 바로크 식 탑 안에 걸려있다.
매 정시가 되면 탑 안에 들어있는 27개의 '로레타 종'이 울린다고 한다.



프라하의 '로레타'는 1626년에 건설된 이후 지금까지 중요한 순례지로 남아있다고 한다.
카테리나 로브코위츠의 위탁을 받아 지어졌는데, 그녀는 로레타의 산타 카사 전설에 관심이 많은 체코 귀족이었다고 한다.
바로크 식 건물 정면을 세운 사람은 크리스토프와 킬리안 이그나즈 디엔첸호퍼였다고.



로라타 정면 입구 위의 난간은 성요셉과 성 세례자 요한 상으로 장식돼 있었다.
온드레이 퀴타이너(Ondrej Quitainer)가 조각했다고 한다.


원래 '산타 카사'는 이 건물 정가운데 있고
주변을 회랑으로 둘러싼 것은 1661년이라고 한다.
회랑은 로레타를 방문한 순례자들을 위해 대합실로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프로스코로 덮여있어 굉장히 아름다웠다.
촬영이 금지돼있어서...찍은 사진이 없어 안타깝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오리지널 로레타' 산타 카사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여러 선지자들의 모습이 치장 벽토에 나타나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 부조 작품으로 표현된 것도 볼 수 있었다.

왼쪽의 분수 조각상은 '예수 부활상'으로 장식돼있었다.


산타 카사의 내부 모습이다.
독특하게도 나무로 만든 '검은 성모 마리아'가 있었다.
마리아의 생애를 그린 벽화와 붉은 색과 은색의 제단... 모두가 독특했다.
그래서 더욱 성스러운 느낌이 났는지도.

참, 이 곳의 벽돌은 팔레스타인 오리지널 벽돌이라고 한다.



로레타 회랑 내에 있는 예수강탄 교회(Church of the Nativity of Our Lord)의 내부다.
역시 현란한 바로크 양식.
마냥 화려하게 보이지만, 사실 이 18세기 교회 벽에는
 데드 마스크로 덮인 밀랍 해골을 비롯해 무시무시한 유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름다운 프레스코는 바츨라프 바브리넥 레이너의 작품이라고.


이곳은 슬픔의 성모 마리아 예배당(THE CHAPEL OF OUR LADY OF SORROWS).
한쪽켠에 마련된 제단이 독특해 찍어뒀는데
십자가에 못박혀 있길래, 처음엔 예수님인 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사람은 여자성인, 성녀 윌게포르티스!
가톨릭식으로는 빌제포르타(Wilgefortis)이다.
헉! 수염이 나 있는데?
이는 이유가 있다.

포르투갈의 공주로 태어난 성녀 빌제포르타는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부친의 결혼 강요를 물리치기 위하여 결혼할 수 없는 징표를 늘 주님께 간구하던 중 얼굴에 수염이 돋아났다고 한다.
그러나 성녀는 이미 시칠리아(Sicilia)의 왕과 결혼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왕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결국 그녀의 부친은 성녀 빌체포르타를 십자가형에 처하였다고 한다. 쩝;;

이밖에도 로레토에는
종교의식에 사용되었던 전례용품 등의 보물도 많았는데...사진촬영 금지라서..;;

여하튼 이곳은 17세기 당시 체코 가톨릭계의 발버둥(?)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럼 이제 로레타 근처에 있는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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