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프라하를 대표하는 교회이자 프라하 성 안의 최대 볼거리,
성 비투스 대성당(Katedrala sv. Vita)에 갔다.
성 비투스는 '성 비토'를 일컫는 말. 이탈리아의 순교자라고 한다.

이쪽은 성 비투스 성당의 북쪽 파사드.
플라잉 버트리스가 아름답다^^



좀더 가까이에서 본 성 비투스 대성당 서쪽 파사드.
정교하고도 섬세한 석조 세공 장식~
여기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석누조가 있었다.
 석누조란 가고일로 많이 알려져있는데
낙수 홈통이 괴물상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뭐, 고딕성당의 전통적인 기법이다.




성당의 주 정문 노릇을 하는 서쪽 파사드.
쌍둥이 첨탑이 눈에 띈다.
중세 전성기의 프라하는 유럽에서 파리 다음으로 주요한 도시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던 한적한 곳이었으나,
슬라브인과 독일인, 유대인이 끊임없이 이주해오면서 아주 주요한 정치적 거점이 되었다고.

가파란 블타바 강(독일의 몰다우강 기슭)위에 수많은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흐라드차니 지역은
과거에 프라하가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성 비투스 대성당도 이곳에 있는 프라하 성 안에 있다.



프라하 대성당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기까지는 6백년이 걸렸단다.
원래는 1096년에 봉헌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바실리카가 있었다.
그러나 14세기 중엽에 프라하가 주교관구가 되면서 지금의 고딕양식 대성당으로 대체됐다.
이는 프라하를 자신의 거처지로 정한 룩셈부르크의 카를 4세가 의뢰한 것이다.

대성당 건축에 처음 참여한 건축가는 아비뇽에서 활동하던 마티아스였다.
설계는 그와 후임자 페트르 파를레슈의 작품이다.
페트르가 죽은 뒤에는 그의 아들 벤첼과 요한이 이 일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1929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단다.



전체길이 124m, 너비 60m, 천장의 높이는 33m,
3기의 탑 가운데 남쪽탑은 96.5m, 서쪽 정면에 있는 2기의 탑은 82m이다.
워낙 거대해서 한번에 성당을 다 담기 힘들었다.



줄서서 들어간 '성 비투스 대성당'의 내부.
중앙 신랑은 그 엄청난 높이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기둥에 영묘한 느낌을 주는 듯.



'성 비투스 성당'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아름답기도 아름답지만
다른 고딕식 성당에 비해, 스테인드글라스가 많이 설치돼있는 걸로도 놀라웠다.
 

요것이 바로,
체코가 자랑하는 아르누보의 대가 알퐁스 무하 作 <성 치릴와 성 메토디우스>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중
 제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다른 스테인드글라스에 비해서 좀더 또렷한 그림액자같은 느낌?(모자이크가 아니어서 그런듯)

성 치릴과 성 메토디우스 두 사람은 보헤미아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그리스도인 선교사 형제라고 한다.
제일 아랫부분 중앙에 있는 푸른 의복을 휘감은 두 사람이 그들.

사진 중앙에 붉은 의복을 입고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는 소년은 체코의 수호성인 바츨라프 왕이라고 한다.


비투스 성당에는 또 여러개의 채플(기도실, 예배당)이 있었다.
채플에 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스테인드글라스도 볼거리! 

우리쑹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며 연신 우와~우와~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리고 하나하나 다 카메라에 담겠다며 팍팍 찍는다.
지금부터 스테인드글라스+채플을 감상해보시라 -_-;;




위 사진에서 3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중 맨 왼쪽에 스테일드 글라스를 주목해보시면
성인이 3명 보이는데, 왼쪽부터 성 아달베르트와 성 키릴루스(Cyrillus), 성 클레멘스이다.

맨 오른쪽 스테인드 글라스의 성인들은
 왼쪽부터 성 루드밀라, 성 메토디우스(또는 메토디오), 성 벤체슬라오이다.


위 사진과 같은 곳이다.
위 사진은 스테인드글라스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사진은 채플에^^
'마리아 예배당'이라고.


주제단 앞에서 정문족(성 비투스 성당의 서쪽 파사드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제일 눈에 띄는 건, 일명 '장미의 창'이다.
정문 위에 붙어있는 이 유리창을 제작하기 위해, 무려 2만 7천여장의 색유리가 사용됐다고 한다.
1925년에서 1927년에 걸쳐 프란티쉑키세라가 디자인 했다고.


주제단. 성상 안치소의 모습.
이 성단소는 1372년부터 페터 파를러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높이 치솟은 둥근 천장과 복잡하게 짜인 고딕식 격자창으로 유명하다.
 

주제단 위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모습.
성부의 품에 안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인다.


주제단의 오른쪽 옆에는 성 얀 네포무츠키의 커다란 무덤이 있다.
1736년에 은으로 만들어진 이 정교한 무덤은 반개혁 종파의 핵심인물이었던 얀 네포무츠키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은빛을 발하는, 묘 위에 장식된 조각상. *.*
천사들에 의해 성 얀 네포무츠키가 천국으로 옮겨지는 승천을 묘사했다.
이를 위해 사용한 은만 해도 2t에 달한다고.


얀 네포무츠키에 대해서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피에 왕비를 시기하고 의심했던 카를 아들 바츨라프 4세가
그녀의 청문사제였던 네포무츠키에게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듣고자했으나, 그가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왕의 명령으로 입술이 봉해져 카를교에서 블타바강으로 던져졌다고. 일명 순교한 거다.
그가 물속으로 사라진 그곳에 다섯개의 별이 나타나서 수면에 반짝였다나.
카렐교에 그의 동상이 있는데,
그의 머리 주위에 별이 반짝이도록 묘사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18] 카렐교에서 30개의 아름다운 성인조각상을 보다 참고)



이는 사실 전설일뿐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당시 왕권과 교회권력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데
교회측이 네포무츠키에게 폭군 바츨라프 4세에 의해 살해된 성자라는 역할을 줘 그의 숭배자들을 만들어내고
 개혁파였던 얀 후스와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을 억제하는 효과를 위해 '만들어낸 전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변함없다. 카렐교에서 사람이 제일 많이 모여드는 동상도 네포무츠키의 동상 아닌감.

 

설교단도 화려하다. 1618년에 만들어졌다고.
바로 앞에 철책으로 둘러싸인 건 왕릉이다.
1564년에 죽은 페르디난트 1세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아들 막시밀리안 2세가 이 왕릉에 함께 묻혀있다.
좀더 가까이에서 찍었어야 하는 건데 -_-;;



고딕성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바로크적인 장식물;;



되돌아갈 수 없는 길 -_-
사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동선은 엄격히 짜여져있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가서 쭉 한바퀴 도는 것.

그런데 좀더 지나친 것을 자세히 다시 보고싶어 뒤돌아갔더니
즉각 관리인이 제지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동선이 얽히고 혼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나.
다시 보려면 출발지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다시 봐야한다는 거~

  

성 비투스 성당의 또 하나의 보물
1367년에 봉헌된 성 바츨라프(St. Vaclav, 벤체슬라우스)예배당이다.
이 곳은 출입금지.
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 자세히 구경을 못했다.
게다가 입구에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아쉽 =.=



이 예배당의 주인공 바츨라프에 대해 알아보자면,
그는 중세에 체코를 통치했던 왕이었다.
보헤미아(체코의 서부지역)에 기독교를 처음 들여온 그는 형제에게 암살당한 불운한 자이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비투스 대성당은 바츨라프가 설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츨라프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이 예배당에 잠들어있다.



성 바츨라프 예배당은 14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으며, 다른 에배당에 비해 넓고 벽으로 나뉘어져 있다.
예배당 벽은 황금색으로 옻칠이 되어있고
석류석, 자수정, 에메랄드 등 1372개나 되는 크고 작은 여러가지 보석이 박혀있다고 한다(나는 제대로 못봤지만 ㅠㅠ)
14세기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수난 벽화와 함께 위쪽에는 성 바츨라프의 생애를 그린 벽화가 있으며,
14세기에 만들어진 성 바츨라프의 조각상도 있다.
보석의 제단, 황금으로 빛나는 성궤 등 14세기 보헤미아 예술의 높은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단다.


이 문이 성 바츨라프 예배당 북문과 연결돼 있다.
들어가볼 수 없어서 북문에 달린 청동고리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ㅜㅜ

앞서 얘기했듯이 935년에 젊은 바츨라프는 형 볼레슬라프의 사주로 살해됐다.
바츨라프가 오전 미사를 올리기 위해 비투스 성당에 들어서려는 순간 암살자들이 그를 뒤에서 해쳤다고 한다.
 성 바츨라프 예배당 북문 청동고리가 유명한 이유는
성 바츨라프가 형 볼레슬라프에 의해 살해될 당시 이 고리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바츨라프 예배당 북문과 연결돼 있는 곳.
앞에 황금문이 보인다. 황금문은 19세기까지는 성당의 주요 출입구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특별한 경우에만 문을 개방한다고.



황금문 위에는 Max Svabinsky가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가 자리잡고 있다.
'최후의 심판'을 묘사했다고 한다.


황금문 맞은편에는 아름다운 성당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1757년에 만들어졌다고.


Kamil Hibert가 만든 개방적인 계단도 볼 만하다.
체코 네오고딕양식의 건축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



그리고 다시 출발점에 되돌아왔다^^

'성 비투스 성당'은 고딕양식의 전통과 관레를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레이서리(tracery, 복잡하게 얽힌 창살무늬)에서 볼 수 있는 베시카 피시스 문양(vesica piscis,두개의 원을 겹쳤을 때 가운데 생기는 끝이 뾰족한 타원형의 장식)은 영국 고딕양식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고.

또 전통적인 리브볼트(rib vault, 둥근 천장에 아치형의 리브를 교차한 구조)를 벗어나
삼각형을 교차시켰을 때 생기는 열십자 모양으로 리브(rib, 둥근 천장에 있는 갈빗대 모양의 뼈대)가 교차하는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했다는 점에서도 그런 평가를 받는 이유가 되고 있단다.

일단 정문 안으로 들어서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고고히 살아남은 웅장한 기둥들과 난간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마저 잊게 될만큼 성스럽고 아름답다.
또 건축학적으로 실험적이어서...여러모로 사랑받는 성당이다.
체코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이 된 이유, 능히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Trackback : 1 And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