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프라하성을 본격적으로 파헤쳐본다!ㅎㅎ
처음으로 간 곳은 구왕궁(Stary Kralovsky Palac).
12세기에 보헤미아 왕이 머물기 위해 지은 구왕궁은
16세기에 합스부르크가가 왕이 되어 성내에 새로운 궁전을 짓기까지 역대국왕이 살았던 곳이다.

구왕궁 창문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모습^^


여기는 구왕궁 내 신토지 문서 보관소(The New Land Rolls).
천장과 벽에 빼곡히 그려진 문장은
1561년에서 1774년 사이에 이 곳에서 토지공문서 관리관 역할을 한 귀족들의 문장이다.


이 방은 구왕궁 내 보헤미아 대사관 사무국.
네덜란드 식의 이 17세기 난로가 합스부르크 왕실 사무실을 장식하고 있었다 한다.


이곳은 1618년 막다른 지경에 몰린 비가톨릭파 일파(신교도)가
3명의 왕 고문관을 프라하 성의 창밖으로 내던지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방이기도 하다.
내던져진 사람들은 약 15미터 아래로 떨어졌으나, 용케 엉덩방아만 찧고는 살아났다고 한다.
가톨릭교 측에서는 천사들의 도움으로 이들이 목숨을 건졌다고 믿었다고...


오, 왕궁답게 왕관도 전시돼 있고...


천장의 아치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빗살무늬...
요것이 구왕궁의 특징인 것 같았다.


이곳은 왕실전용 '모든 성인들의 예배당'이다.
카를 4세를 위해 페터 파롤러가 모든 성인들의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1541년의 화재 이후 둥근 천장은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됐다고.


드디어 구왕궁에서 제일 주목할 만한 곳 '블라디슬라프 홀'이 나왔다.
3층의 큰 방인데 15세기말부터 16세기초의 블라디슬라프 야겔론스키 왕의 시대에
건축가 베네딕트 레이트(Benedikt Ried)가 지은 것이다.
길이 62m, 너비 16m, 천장높이 13m로, 중세유럽에서는 교회를 제외하고 기둥없는 방으로서는 가장 큰 것이었다고 한다.


구 왕궁 내 고딕 플로어에서는 프라하성의 역사전시관을 따로 마련해놓고 상설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전시회 제목은 'The Story of Prague Castle'
The thousand-year history of the place where Czeech statehood unfolded.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체코공화국, 보헤미아, 프라하 성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잘 꾸며진 전시회였다.
미로처럼 얽혀있어서 지도보고 잘 따라가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story-castle.cz


프라하 성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무덤을 복원해놓은 모습이다.
전사인듯? 칼을 쥐고 있으니.


우리 쑹이 골라 찍은 프라하 성의 보물.
역시 우리쑹은 저렇게 황금빛 번쩍번쩍한 것을 좋아해 -.-


다음에 볼 곳은 정면에 보이는 성 이르지 바실리카(Bazilika sv.Jiri).
영어식으로 하면, '성 조지 바실리카'.
붉은 색의 건물 정면이 아름다운데 전형적인 17세기 바로크 양식이다.
2기의 흰탑은 정면에서 자세히 보면 굵기가 다르다.
오른쪽의 두꺼운 탑은 아담이라 불리고, 가는 쪽은 이브라 불린다고 한다.


정면에 보이는 무덤이 이 교회를 설립한 브라티슬라프 왕자(915-921)의 무덤이다.

이 뿐 아니라 이 교회에는 9세기에 통치했던 보리보위(Borivoj) 왕자의 미망인인 성 루드밀라가 묻혀있다.
그녀는 기도 중 무릎을 꿇었다는 이유로 며느리인 드라호미라에서 교살됨으로써 보헤미아 최초의 여성 기독교 순교자가 되었다.


성 이르지 바실리카 내에 있는 예배당.
이곳이 보헤미아의 왕족 순교자인 '성 루드밀라의 예배당'이다.
둥근 천장은 16세기의 그림들로 장식돼 있다.


성 이르지 바실리카 옆에는 보헤미아 최초의 여수도원인 '성 이르지 수도원'이 973년에 세워졌었다.
그런데 이 수도원은 18세기 말에 문을 닫고
미술관(national Gallery in Prague/Collection of 19th-Century Art St. George's Convent, Prague Castle)이 되었다.
현재 프라하 국립 미술관의 보헤미아 19세기 미술전시관(1790-1910)으로 쓰이고 있었다.
 홈페이지는 http://www.ngprague.cz/

 

내가 '성 이르지 수도원'에서 인상깊게 본 작품 중 하나.
Emil Jan Lauffer(1837-1909)의 Kriemhild's Accusation
(Kriemhild Accuses Gunther and Hagen of Murdering her Husband Siegfried), 1879.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을 그린 것 같았다.
부르군트 왕가의 왕녀 크림힐트가 자신의 남편 지크프리트를 죽인 군터를 고발하는 장면이다.
굉장히 극적이어서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또 눈에 띄었던 Vaclav Brozik(1851-1901)의 'Goose-Girl'
이 작품은 반대로 소박해서 좋았다. 1880년쯤에 그려진 것이라 추측한다고.


그리고, 제일 기대하고 있었던 '황금소로(Zlata Ulicka)'에 갔다!
컬러풀한 조그만 집이 나란히 서있는 곳! 정말 집 하나하나 빠짐없이 보고 싶어진다.
16세기, 루돌프 2세 시대에 성의 보초병들이 살기 위해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성벽 회랑 아래의 아케이드를 이용한 작은 집이었으나
그후 1층의 높이가 1m도 되지 않는 작은 집이 성벽 부분만이 아니라 길 양쪽에 지어졌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 한쪽은 철거됐다고.


지금은 성벽 쪽에만 15채정도의 집이 보존되고 있는데,
선물가게와 서점 등 작고 예쁜 가게가 들어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아, '황금소로'라고 불리는 이유는
루돌프 2세가 고용한 연금술사들이 이곳에서 불로장생하는 비약을 만들었다고 하는 설에 근거한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이 거리에 금박 장인들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아기자기 작은 집이니..;;
집 안 구경을 할 때 천장에 부딪치지 않도록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황금소로가 유명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체코태생 유대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1916년에서 1917년 사이에 그의 누이와 함께 22번지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카프카의 기념관 및 기념품 샵이 되어버렸지만.


프란츠 카프카의 집이란 문패 앞에서
인증샷도 찍고 ㅎㅎ


황금 소로의 2층 성벽회랑에는 중세의 무구 등이 전시돼 있었다.
2층에서 빼꼼히 고개내밀기.ㅎㅎ


황금소로 23번지 집 1층 앞에서 본 '2층의 나' ㅋㅋ
저렇게 창도 조그마하다.


2층 성벽회랑 안의 모습은 이렇다.
1550년대 후반에 24명의 성 수비대원의 숙소로 쓰인만큼
당연히, 수비대원들의 발자취를 전시해놓았을 것!


이것들은 방패인가?^^;;
성 조지(게오르기우스)의 그림도 보인다.
회화에서 성 조지는 일반적으로 칼이나 창으로 드래곤을 찌르는 백마를 탄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지기에.ㅎ
아마도 성 조지가 기사, 사수, 기사단, 군인의 수호성인이기 때문에 모셔진 듯하다.


16세기 풍의 옷들도 전시돼있었다.
나는 이 시대 영국풍 옷들이 좋더라^^
특히 저 러프칼라~



황금소로는 백탑(Bila vez)과도 연결돼있었는데 중세의 고문 기구 등이 전시돼있었다.
16세기에는 감옥이었으나 나중에 성건설에 참여한 장인들의 집으로 사용된 탑이라 한다.


또 13번지 옆으로는 달리보르카 탑(Daliborka)과도 연결돼있다.
2층 성벽회랑을 쭈욱 관람하다가 자연히 달리보르카 탑을 구경할 수 있는 것.


달리보르카탑은 15세기에 지어진 감옥이었다.
이곳의 첫번째 수감자는 달리보르.
북보헤미아의 기사 달리보르는 농민반란에 가담했다가 붙잡혀 이곳에 감금되었다고 한다.


그는 매년 바이올린으로 슬픈 곡을 연주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결국 처형됐다고.
나중에 스메타나는 그를 제재로 오페라 <달리보르>를 작곡하기도 했다.


           여기는 달리보르카 탑의 1층인데 아래 지하감옥을 홀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무시무시하다-.-;;
이제 이런 무서운 곳과는 작별하고 성스러운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럼, 프라하 성 관람의 백미! '성 비투스 성당'으로 g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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