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0일.
본격적으로 프라하 관광 시작!
전날 밤에 이어 다시 국립박물관(Narodni muzeum)앞에 섰다.
순전히 이 근처에 체코 통화 코루나를 저렴하게 바꿀 수 있는 환전소가 있다고 해서^^;
태양아래에서 다시 본 국립박물관의 모습은
야경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19세기 후반 민족의식이 고양되면서 체코 귀족들이 자금을 모아
체코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광물 수집품을 전시할 건물을 짓기로 했는데
그렇게 지어진 건물이 요제프 슐츠의 설계로 지어진 바로 이 국립박물관이다.
관람할 시간을 따로 마련할 수 없어서, 프라하 떠나기 전에 시간이 되면 가보기로 했는데
결국 내부 구경을 못했다 ㅠㅠ
야경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19세기 후반 민족의식이 고양되면서 체코 귀족들이 자금을 모아
체코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광물 수집품을 전시할 건물을 짓기로 했는데
그렇게 지어진 건물이 요제프 슐츠의 설계로 지어진 바로 이 국립박물관이다.
관람할 시간을 따로 마련할 수 없어서, 프라하 떠나기 전에 시간이 되면 가보기로 했는데
결국 내부 구경을 못했다 ㅠㅠ
국립박물관을 등지고
바츨라프 광장 쪽 횡단보도에 서서 찍은 풍경.
LG냉장고 광고가 보인다.
냉장고가 수박이 됐네?^^ 아이디어 좋다.
바츨라프 광장 쪽 횡단보도에 서서 찍은 풍경.
LG냉장고 광고가 보인다.
냉장고가 수박이 됐네?^^ 아이디어 좋다.
이곳이 바츨라프 광장(Vaclavske namesti)이다.
1348년 카를 4세가 신시가를 건설했을 당시 마(馬)시장으로 만든 곳이
오늘날의 바츨라프 광장으로 변했다고 한다.
언뜻보면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이랑 비슷하다.
차도와 인도로 나뉘어져있고 중앙에 녹지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광화문 광장과 다른점이 있었으니
광화문 광장이 관 중심 행사로만 도배가 된다면
이곳은 여러차례 프라하 시민들의 집회장소가 되었다는 점.
1348년 카를 4세가 신시가를 건설했을 당시 마(馬)시장으로 만든 곳이
오늘날의 바츨라프 광장으로 변했다고 한다.
언뜻보면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이랑 비슷하다.
차도와 인도로 나뉘어져있고 중앙에 녹지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광화문 광장과 다른점이 있었으니
광화문 광장이 관 중심 행사로만 도배가 된다면
이곳은 여러차례 프라하 시민들의 집회장소가 되었다는 점.
신시가에서 환전을 하고 걸어서 구시가로 갔다.
구시가에서 제일 먼저 만난 건 화약탑(Prasna brana).
화약탑 문을 통과하면 첼레트나 거리가 나오고,
첼레트나 거리를 쭈욱 따라가면 프라하 관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구시가지 광장과 만날 수 있다.
화약탑 옆에 있는 시민회관(Obecni dum)의 모습이 더 눈에 띈다.
'프라하에의 경의'라는 제목이 붙은 입구 외벽의 반원형 모자이크화가 정말 화려하다.
카렐 스필라가 이 모자이크화를 그려냈다고 한다.
외관 양식은 네오바르크풍이지만, 내부는 아르누보로 통일돼 있다고 한다.
비록 내부 구경을 못했지만 -.,-
'프라하에의 경의'라는 제목이 붙은 입구 외벽의 반원형 모자이크화가 정말 화려하다.
카렐 스필라가 이 모자이크화를 그려냈다고 한다.
외관 양식은 네오바르크풍이지만, 내부는 아르누보로 통일돼 있다고 한다.
비록 내부 구경을 못했지만 -.,-
지금 시민회관이 있는 자리는 1383-1485년 사이에는 왕이 거주했던 왕정 궁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신학교로 그 후엔 군사학교로 사용되다가 1900년대 초에 지금의 이 시민회관이 세워졌다.
1918년 10월 28일엔 체코슬로바키아가 새로이 독립을 선언한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신학교로 그 후엔 군사학교로 사용되다가 1900년대 초에 지금의 이 시민회관이 세워졌다.
1918년 10월 28일엔 체코슬로바키아가 새로이 독립을 선언한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정말 프라하에서는 시민회관같은 아르누보 풍 건물을 비롯해서
다양한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구시가 밖에서 본 화약탑의 모습이다.
시민회관이 세워지기 전, 왕궁이 있었던 시절에 왕궁과 균형을 이루도록 세운 고딕문이 바로 이 화약탑.
높이는 65m이다.
다양한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구시가 밖에서 본 화약탑의 모습이다.
시민회관이 세워지기 전, 왕궁이 있었던 시절에 왕궁과 균형을 이루도록 세운 고딕문이 바로 이 화약탑.
높이는 65m이다.
구시가 안에서 본 화약탑.
왕궁이 프라하 성으로 옮겨진 뒤로 문이 방치되었는데
17세기 중반에 프라하가 러시아 군에 포위되었을 때 탑이 화약고로 사용되었고
1886년에 개축돼 그 때부터 '화약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왕궁이 프라하 성으로 옮겨진 뒤로 문이 방치되었는데
17세기 중반에 프라하가 러시아 군에 포위되었을 때 탑이 화약고로 사용되었고
1886년에 개축돼 그 때부터 '화약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화약탑을 통과해서 구시가 광장으로 가는 길인
첼레트나 거리(Celetna Ulice).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 중의 하나로 동부 보헤미아로 이어지는 오랜 교역로이다.
옛날 귀족이나 중산계급의 바로크 저택을 구경하면서 거닐 수 있다.

첼레트나 거리(Celetna Ulice).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 중의 하나로 동부 보헤미아로 이어지는 오랜 교역로이다.
옛날 귀족이나 중산계급의 바로크 저택을 구경하면서 거닐 수 있다.
드디어 도착! 구시가 광장~
'프라하의 얼굴'로 통하는 곳이다.
12세기 초에는 블타바 강 우안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던 곳이지만
민중봉기와 처형 등 여러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한 곳이다.

1621년 6월 21일에는 가톨릭 황제인 페르디난트의 명령에 따라
27명의 프로테스탄트 지도자가 이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이는 백산전투(Battle of the White Mountain)의 결과로 빚어진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1619년 체코 귀족들은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를 보혜미아 왕에서 폐위시키고
대신 팔라티네이트가의 프레데릭을 선출했다.
이를 합스부르크가가 가만 보고 있을리가 없었다. 1620년 백산 전투가 발생했고 체코는 합스부르크 군에 패했다.
이 전투 후 보헤미아는 사실상 오스트리아에 부속된 주가 되었고
비가톨릭교도에 대한 박해와 체계적인 독일화 작업이 시작되게 된다.
'프라하의 얼굴'로 통하는 곳이다.
12세기 초에는 블타바 강 우안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던 곳이지만
민중봉기와 처형 등 여러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한 곳이다.
1621년 6월 21일에는 가톨릭 황제인 페르디난트의 명령에 따라
27명의 프로테스탄트 지도자가 이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이는 백산전투(Battle of the White Mountain)의 결과로 빚어진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1619년 체코 귀족들은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를 보혜미아 왕에서 폐위시키고
대신 팔라티네이트가의 프레데릭을 선출했다.
이를 합스부르크가가 가만 보고 있을리가 없었다. 1620년 백산 전투가 발생했고 체코는 합스부르크 군에 패했다.
이 전투 후 보헤미아는 사실상 오스트리아에 부속된 주가 되었고
비가톨릭교도에 대한 박해와 체계적인 독일화 작업이 시작되게 된다.
구시가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중앙에 있는 얀후스의 커다란 군상이다.
프라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후스(1370년경-1415년)는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통렬히 비판하다가
로마교황에게 파문당하고 독일의 콘스탄츠에서 화형당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 순교자로 추앙받았다. 체코인이 자랑하는 위대한 인물이라고.
라디슬라프 샬로운이 제작한 이 기념비는 1915년 후스 서거 500주년 기념일에 제막되었다고 한다.
프라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후스(1370년경-1415년)는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통렬히 비판하다가
로마교황에게 파문당하고 독일의 콘스탄츠에서 화형당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 순교자로 추앙받았다. 체코인이 자랑하는 위대한 인물이라고.
라디슬라프 샬로운이 제작한 이 기념비는 1915년 후스 서거 500주년 기념일에 제막되었다고 한다.
얀후스 기념상 뒤편에 있는 건물이 성 미쿨라셰 교회.
말라스트라나(소지구)에도 같은 이름의 교회가 있기 때문에 헷갈림 주의해야 한다.
쑹과 나는 말라스트라나의 성 미쿨라셰 교회를 중점적으로 관람했었다.
왼편에 있는 건물은 구시가 최대의 관광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구시청사다.
구시가 광장의 동쪽모습.
맨 왼쪽에 있는 로코코 양식의 건물은 골스 킨스키 궁전(Palac Golz-Kinskych)이다.
18세기 중반에 지어진 골스백작의 저택인데, 합스부르크가의 지배하에서는 독일어로 교육하는 엘리트 중등학교로 쓰였다고 한다.
80m의 쌍탑이 하늘 위로 삐쭉 솟아있는 건물은 '틴 성모교회(Kostel Panny Marie Pred Tynem)'.
1365년에 현재의 고딕양식으로 개축된 이 교회는 후스파의 거점이기도 했다고 한다.
정식명칭은 '틴(세관)앞의 성모 마리아 교회'.
맨 왼쪽에 있는 로코코 양식의 건물은 골스 킨스키 궁전(Palac Golz-Kinskych)이다.
18세기 중반에 지어진 골스백작의 저택인데, 합스부르크가의 지배하에서는 독일어로 교육하는 엘리트 중등학교로 쓰였다고 한다.
80m의 쌍탑이 하늘 위로 삐쭉 솟아있는 건물은 '틴 성모교회(Kostel Panny Marie Pred Tynem)'.
1365년에 현재의 고딕양식으로 개축된 이 교회는 후스파의 거점이기도 했다고 한다.
정식명칭은 '틴(세관)앞의 성모 마리아 교회'.
틴 성모교회 옆 건물에는 '석종의 집'이 있다.
돌종이 건물 오른쪽 모퉁이에 딱 붙어있는게 신기하다.
건물 모퉁이에 달린 석종은 이 집이 중세 때 궁전이었음을 나타내는 표식이라고 한다.

이번엔 구시가 광장의 남쪽 건물을 구경할까 했는데
이런! 공사중이다 ㅠㅠ
슈토르크 하우스의 그림은 완전 다 가려져있었다.
왼쪽 노란 박스안에 있는 것이
성 바츨라프가 말을 타고 있는 그림인데
19세기 말경 미쿨라슈 알레슈의 작품이다.
그림 말고도 그 건물 자체가 유명한데...
일명 '성모 마리아 석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한 신 르네상스 양식을 자랑하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오른쪽 노란 박스 속에 있는 건, 한 소녀가 양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부조작품이다.
16세기에 지어진 집의 표지인데,
뿔 하나 달린 양 때문에 '일각수'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겨우 공사 비계 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구시청사(Starom estska radnice)가 구시가지 광장에서 제일 볼만한 건물이다.
1338년에 지어졌는데, 이후 수세기를 거치면서 구시청사 확장공사에 따라
여러 채의 건물이 함께 지어져 오늘날 화려한 고딕,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술을 보여주게 됐다 한다.

구시청사가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 시청 천문시계 때문이다.
1490년 하누슈라는 이름의 거장 시계공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시의회 의원들은 이 시계공이 다른 곳에서도 이런 걸작을 만들 것을 염려해
이 시계공의 눈을 멀게 했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아래 둥근 판의 모습도 예뼜다.
구시가의 문장 주위를 별자리로 둘러싼 모습인데 별자리 둘리에는 12달을 보헤미아의 농민 생활로 표현한 그림이 에워싸고 있다.
이 시계를 호위(?)하고 있는 있는 사람모양의 장식물도 다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해골은 죽음의 신, 악기를 가진 투르크인 남자는 번뇌, 거울의 청년은 허영, 금자루를 쥔 남자는 욕심을 상징한다고.
9시부터 21시까지 매 정시마다 20초간만 장치가 움직여서 시간 전에 가서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쇼를 놓치기 쉬웠다.
그걸 다 알고 있는 모양인지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시계탑 앞은 관광객들로 장사진이었다.
그런데 기대가 커서 그런지
20초만에 끝난 시계탑 쇼는 너무도 허무했다.
쇼가 끝난 뒤에 일제히 터지는 관광객들의 탄식소리를 잘 들어보시길 ^^;;
쇼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해골이 줄을 당겨 종을 울리고 왼손의 모래시계를 거꾸로 놓으면
맨 위의 창이 열리면서 12명의 그리스도 사도가 등장한다.
12명이 한바퀴 돌면 닭이 울고 종이 울린 뒤, 문이 닫히는데
사실 꽤나 허무하다는 거 ㅋㅋ기다린 보람도 없이~

천문시계 쇼를 본 뒤
구시가광장에 있는 성 미쿨라셰 교회를 입구에서만 잠깐 본후
카렐교로 향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프라하에는 성 미쿨라셰 교회가 두개 있다.
좀더 유명한 건 말라스트라나에 있는 성 미큘라세 교회.
구시가광장에 있는 성 미쿨라셰 교회는
백산전투 이후 베네딕트 수도원의 일부가 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프라하 주둔군의 부대로 쓰이기도 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후스파 교회에 양도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바로크 외관에 비해
내부는 단정한 모습이었다.
자세한 교회구경은 말라스트라나에서 하기로 하고
그럼, 연인의 다리 '카렐교'로 가보도록 할까?^^
돌종이 건물 오른쪽 모퉁이에 딱 붙어있는게 신기하다.
건물 모퉁이에 달린 석종은 이 집이 중세 때 궁전이었음을 나타내는 표식이라고 한다.
이번엔 구시가 광장의 남쪽 건물을 구경할까 했는데
이런! 공사중이다 ㅠㅠ
슈토르크 하우스의 그림은 완전 다 가려져있었다.
왼쪽 노란 박스안에 있는 것이
성 바츨라프가 말을 타고 있는 그림인데
19세기 말경 미쿨라슈 알레슈의 작품이다.
그림 말고도 그 건물 자체가 유명한데...
일명 '성모 마리아 석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한 신 르네상스 양식을 자랑하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오른쪽 노란 박스 속에 있는 건, 한 소녀가 양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부조작품이다.
16세기에 지어진 집의 표지인데,
뿔 하나 달린 양 때문에 '일각수'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겨우 공사 비계 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구시청사(Starom estska radnice)가 구시가지 광장에서 제일 볼만한 건물이다.
1338년에 지어졌는데, 이후 수세기를 거치면서 구시청사 확장공사에 따라
여러 채의 건물이 함께 지어져 오늘날 화려한 고딕,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술을 보여주게 됐다 한다.
구시청사가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 시청 천문시계 때문이다.
1490년 하누슈라는 이름의 거장 시계공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시의회 의원들은 이 시계공이 다른 곳에서도 이런 걸작을 만들 것을 염려해
이 시계공의 눈을 멀게 했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아래 둥근 판의 모습도 예뼜다.
구시가의 문장 주위를 별자리로 둘러싼 모습인데 별자리 둘리에는 12달을 보헤미아의 농민 생활로 표현한 그림이 에워싸고 있다.
이 시계를 호위(?)하고 있는 있는 사람모양의 장식물도 다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해골은 죽음의 신, 악기를 가진 투르크인 남자는 번뇌, 거울의 청년은 허영, 금자루를 쥔 남자는 욕심을 상징한다고.
9시부터 21시까지 매 정시마다 20초간만 장치가 움직여서 시간 전에 가서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쇼를 놓치기 쉬웠다.
그걸 다 알고 있는 모양인지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시계탑 앞은 관광객들로 장사진이었다.
그런데 기대가 커서 그런지
20초만에 끝난 시계탑 쇼는 너무도 허무했다.
쇼가 끝난 뒤에 일제히 터지는 관광객들의 탄식소리를 잘 들어보시길 ^^;;
쇼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해골이 줄을 당겨 종을 울리고 왼손의 모래시계를 거꾸로 놓으면
맨 위의 창이 열리면서 12명의 그리스도 사도가 등장한다.
12명이 한바퀴 돌면 닭이 울고 종이 울린 뒤, 문이 닫히는데
사실 꽤나 허무하다는 거 ㅋㅋ기다린 보람도 없이~
천문시계 쇼를 본 뒤
구시가광장에 있는 성 미쿨라셰 교회를 입구에서만 잠깐 본후
카렐교로 향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프라하에는 성 미쿨라셰 교회가 두개 있다.
좀더 유명한 건 말라스트라나에 있는 성 미큘라세 교회.
구시가광장에 있는 성 미쿨라셰 교회는
백산전투 이후 베네딕트 수도원의 일부가 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프라하 주둔군의 부대로 쓰이기도 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후스파 교회에 양도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바로크 외관에 비해
내부는 단정한 모습이었다.
자세한 교회구경은 말라스트라나에서 하기로 하고
그럼, 연인의 다리 '카렐교'로 가보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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