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쑹과 내가 묵은 곳이다.
슈티글브로이(Stieglbraeu)호텔.
2박3일동안 함께 한 셈인데, 별 추억이 없다.
늦게 도착해서 정신없이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은 하루종일 할슈타트에 있다가 늦게 돌아와 또 정신없이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아침에 체크아웃을 했으니...
슈티글브로이(Stieglbraeu)호텔.
2박3일동안 함께 한 셈인데, 별 추억이 없다.
늦게 도착해서 정신없이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은 하루종일 할슈타트에 있다가 늦게 돌아와 또 정신없이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아침에 체크아웃을 했으니...
따로 마련돼있는 레스토랑 간판.
슈티글이라는 말 자체가 잘츠부르크의 맥주양조업체 이름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잘츠부르크의 하우스 맥주를 즐길 수 있기로 유명하다.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Rainerstrasse를 향해 쭉 직진하면
보이는 것처럼 노란색 건물이 고개를 내민다.
저 노란색 건물이 잘츠부르크에서 우리의 휴식처가 되어주었던 슈티글브로이 호텔이다.
체코 프라하로 떠나는 기차가 오후 2시 22분에 있어서,
그 전에 얼른 잘츠부르크 시내 구경을 마쳐야했다.
작은 도시여서 도보로 구경하기로 하고 제일 먼저 간 곳은
신시가에 위치한 미라벨 정원(Mirabellgarten)
미라벨 정원으로 들어서기 직전에
갓 태어난 부부를 먼저 보았다.
이곳에서 막 결혼식을 올렸나보다.
아름다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서, 참 좋았겠다~
웨딩카도 보였다.
우리나라 웨딩카는 깡통에다가 풍선에다가 엄청 화려(?)하게 꾸미는데
그에 비해 잘츠부르크 버전 웨딩카는 꽃만 달랑, 참으로 소박하다^^
우리나라 웨딩카는 깡통에다가 풍선에다가 엄청 화려(?)하게 꾸미는데
그에 비해 잘츠부르크 버전 웨딩카는 꽃만 달랑, 참으로 소박하다^^
미라벨 정원이 유명해진 것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때문.
마리아와 아이들이 도레미 송을 부르던 곳이 바로 미라벨 정원이다.
미라벨 정원 자체로 얘기해보자면, 먼저 빈의 화려한 정원을 보고온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기하학적 모양의 정원이 아름다우나, 빈에 가면 널린 게 이런 기하학적 모양의 정원이고...
그래도 이 정원에 서면, 잘츠부르크의 유명한 건축물을 한번에 볼 수 있어서 좋다.
바로 사진 속 내가 서있는 자리가 명당(?)인 거다.
뒤에 보이는 연초록빛모양의 돔이 있는 건물이 '잘츠부르크 대성당'이고
그 뒤에 위쪽으로 솟은 우람한 성채가 '호엔잘츠부르크 성채'다.
계절마다 여러종류의 꽃이 번갈아 피고,
곳곳에 놓여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상들과 분수로 언제나 화려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다.
곳곳에 놓여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상들과 분수로 언제나 화려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다.
미라벨 정원 옆에는 미라벨 궁전(Schloss Mirabell)이 있다.
미라벨 궁전은 1690년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였던 볼프 디트리히가 그의 애인인 잘로메 알트를 위해
건축가 피셔 폰 에르라흐에게 건축을 맡기면서 만들어졌다.
잘로메는 상인의 딸로 매우 아름다웠으며, 대주교와의 사이에 15명의 자식을 낳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절대적인 권력을 지녔던 당시 성직자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을 위해 모차르트는 미라벨 정원에서 연주를 했다고도 전해진다.
원래 미라벨 궁전의 이름은 '알테나우 궁'이었다고 한다.
디트리히가 실각한 뒤, 잘로메 알트는 이 궁을 빼았겼고
이후 알테나우 궁은 대주교의 별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8세기 초에 유명한 건축가 힐데브란트에 의해 대규모 궁전으로 개축되었고
미라벨 궁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 떵떵거리는 권력, 대주교들이 살았던 곳이
저 위에 보이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채(Festung Hohensalzburg)'다.
해발고도가 약 120m에 이르는 동산위에 솟아있는 성채는, 대주교 게프하르트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높은 곳에 자리잡은 이유는 지배와 감시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사진은 미라벨궁전을 보고 난뒤 구시가지로 걸어가는 와중에
슈타츠 다리(Staats brucke)에서 찍은 것이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전깃줄...어지럽다 @.@
잘츠부르크가 모차르트의 고향인만큼,
모차르트의 생가(Mozarts Geburtshaus)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
모차르트는 이곳 건물 3층에서 1756년 1월 27일 태어났다.
모차르트 덕분에 매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도 열리고,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에게 빚 많이 지고 있는 듯!
모차르트 생가 앞의 간판 앞 모습이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매표소.
모차르트 생가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어야 한다.
1917년 모차르테움(Mozarteum, www.mozarteum.at)재단에서 이곳을 인수해
박물관으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시절, 부엌의 모습도 그대로~
1층에는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 사용한 바이올린 및 건반악기와 악보, 초상화 편지 등이 전시돼 있었다.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악보가 자주 눈에 띄었다.
모차르트가 사용한 하프시코드.
피아노가 발명되어 대중화되기 전에는, 이 하프시코드가 건반악기의 리더였다.
금속 현을 치는 사실상 타악기(?)인 피아노와는 달리
하프시코드는 현을 뜯으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강약 조절이 어려웠고,
소리가 작은 단점이 있었다.
훗, 이런 재밌는 그림도 있었다.
모차르트가 '분변음욕증'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모차르트가 사촌누이인 안나 마리아 테클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마음을 믿지 않는 놈들은 지금부터 영원히 내 엉덩이나 핥으라고 하시구려!"라고 써냈던 것을 그대로 옮긴 그림일까?
그가 1777년에 테클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쓴 문구 몇가지 소개.
"좋은 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지직 소리가 날 정도로 침대에 대변을 보세요. 건강하게 주무십시오. 항문을 입까지 쭉 펴세요."
엽기적인 모차르트....-_-;;;;;
2층에는 모차르트의 유명한 오페라 무대에 관련된 전시물이 공개돼있었다.
이건 모차르트가 죽기 두달전에 완성한 징슈필 '마술피리(1791년)'의 무대다.
마찬가지로 '마술피리'의 무대 디자인. 1956년에 제작된 무대라고 한다.
'밤의 여왕'이 등장할 때의 모습인가?
소프라노 조수미가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불러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이미 유명한 얘기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감상실도 마련돼 있었다.
방 자체가 특이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첨단의 음향시스템이 따로 필요 없었다.
음을 한 곳에 모아주는 역할을 해내어서
우리 쑹이 제일 좋아했던 곳^^
모차르트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모차르트는 이 흰색 가발을 즐겨 쓰고 다녔다.
이 시대 사람들이 흰색가발을 쓰고 다닌 이유는
'백발노인의 지혜'를 닮고 싶어서였다고.
1770년대에 존경받는 모델은 '어린 얼굴에 노인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나?
모차르트가 실제 사용했던 가구들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모차르트 생가는 저렇게 개방형 복도식 건물이었다.
복도 난간에서 한컷.
뒷쪽 건물의 모습도 덩달아 찍혔는데
창문이며 가로등 모양이 여전히 고풍스럽다.
모차르트 생가는 게트라이데가세(Getreidegasse) 9번지에 위치해있었다.
게트라이데가세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게트라이데가세가 유명한 이유는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어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의 흥미로운 간판들 때문이다.
좁은 거리에서 관광객들의 머리위를 덮고 있는 것은 바로 첼제 세공품인 돌출간판.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어떤 상점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가게마다 아이디어를 동원해 예술적인 간판을 만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옷가게인 zara의 돌출간판은
옷 치수 재는 줄자와 가위가 그려져있다.
여러 재미있는 간판이 정말 많았다.
맥도널드 간판마저 특이해서 zoom기능을 이용해 찍으려고 하는 찰나.
이럴수가! 카메라가 말을 안듣는다.
렌즈고장! 저번 태국여행때 코끼리 위에서 카메라를 떨어뜨린 후에 이같은 증세가 나타났었는데
저절로 고쳐져서, 냅둔것이 화근이었나보다.
헉! 어떡해 ㅠㅠ
(결국 게트라이데가세에서 건진 돌출간판 사진은, 저 zara 사진 한장!)
서둘러 모차르트 광장에 있는 인포메이션센터에 가서
캐논 A/S센터가 어딘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A/S 센터가 없다는 것 ㅠㅠ
결국 그러면 "카메라 파는 곳이 어디냐. 면세점이었으면 좋겠다"고 물었다.
친절하게 지도에 표시해주는 센터 직원.
헐...신시가지에 전자제품 전문매장 Hartlauer이 있다는데
그럼 구시가지에 있는 여러 관광명소는 포기해야 된다는 건가?;;
직원이 표시해준 Hartlauer의 위치.
오른쪽 위 초록색 i표시가 있는 곳이 인포메이션센터 현재위치.
그 옆의 X자 표시는 구시가지에 있는 전자제품 파는 곳인데, 비추라 그랬고
신시가지에 있는 Hartlaver이 크고 종류가 많아서 추천한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레지덴츠 광장, 대성당(돔) 등을 보는둥 마는둥 빠르게 지나친 후에
신시가지로 복귀.
니콘 쿨픽스 S570을 구입했다. 엉엉엉
우리쑹이 설득하길....
"조금후에 프라하에 가는데, 프라하가 더 중요하지 않겠니?
프라하에서 카메라 사느라 시간 허비할 바에야 잘츠부르크는 과감히(?) 희생하자"
뭐 이렇게 된 거다.;;
그리하여, 지금부터는 니콘으로 찍은 사진들;;
우리에게 '비극의 도시'로 남은 잘츠부르크를 뒤로 하고
프라하 행 오후 2시 22분 기차를 탔다.
이곳은 잘츠부르크 중앙역 승강장.
그리고 출발.
북쪽으로, 북쪽으로 내달리는 기차.
카메라 테스트! ㅋ
달리는 기차안에서도 잘 찍히는구먼-
달리는 기차안에서도 잘 찍히는구먼-
날씨마저 오묘해서...
잘츠부르크를 떠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잘츠부르크를 제대로 구경한건지, 만건지....
어쩌다보니 너무 홀대했네 흑흑
내 마음이 아프건말건
그래도 기차는 달린다~
프라하에 도착하기까지 6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할일없이 창밖풍경만 찍어댔다.
오스트리아 북부지역 농가들. 평화로워보인다.
그 와중에 오스트리아 중북부 오버외스터라이히 주에 있는 도시 벨스(Wels)도 지났다.
벨스는, 중세시절 중요한 시장도시였다고 한다.
벨스는, 중세시절 중요한 시장도시였다고 한다.
빈에서 잘츠부르크로 올 때 거쳤던 린츠(Linz)도 또 만나고....
드디어 오스트리아와 체코의 국경역인 써마로우(Summerau)에 도착!
이 다음에 나오는 역들은 이제 모두 체코인 줄 알고 Rybnik역을 찍었는데
검색해보니 폴란드 영토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멀고먼 폴란드 쪽을 거쳐서 갔을리는 없고;;
체코에도 같은 이름의 역이 있나보다
자신있게 체코공화국의 영토라고 말할 수 있는
체스케 부데요비체!
체크 이호체스키 주의 주도이다.
체스케 부데요비체!
체크 이호체스키 주의 주도이다.
타보르 역도 지났다.
타보르 역시 체크 이호체스키 주에 있는도시다.
이제 북쪽으로 80km만 가면 프라하가 나온다!
그리고 오후 8시 41분.
프라하 중앙역(Praha hlcni nadrazi)에 도착했다.
중앙역을 바로 벗어나니 보이는 것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국립박물관(Marodni Muzeum).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칵테일 파티장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건물로 유명하다.
야경으로 보니 감회가 또 새로웠다.
국립박물관 바로 앞에는 바츨라프 광장(Vaclavske Namesti)이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수호성인인 성 바츨라프 기마상이 있는 이곳은
체코의 근대사를 지켜봐온 광장으로 유명하다.
1989년 11월의 벨벳혁명 때에도 몇십만명이나 되는 시민이 이 광장을 메우기도 했다.
프라하 민박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한숨을 돌리니,
쑹과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그럼, 프라하 구경은 내일로....-_-;
체코슬로바키아의 수호성인인 성 바츨라프 기마상이 있는 이곳은
체코의 근대사를 지켜봐온 광장으로 유명하다.
1989년 11월의 벨벳혁명 때에도 몇십만명이나 되는 시민이 이 광장을 메우기도 했다.
프라하 민박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한숨을 돌리니,
쑹과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그럼, 프라하 구경은 내일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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