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관광 마지막날.
이제껏 예정에도 없이 택시를 타고 다닌게 너무 아쉬워서
마지막날 만큼은 툭툭이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호텔 컨시어지가 연결해준 툭툭이 기사.
젊은 분이었는데 이름이...저기 써있는 Mr. Heanh가 맞는지 모르겠다 ㅋ
친절한 청년이었던 기억.



앙코르 관광의 대미를 장식할만한 곳은
앙코르 예술 중 '최고의 보석'이라고 할만큼 명망높은 힌두교 사원인 '반떼이 스레이'가 제격 아닌가 ㅋㅋ
그런데 이곳이 좀 멀다.
씨엠립에서 약 32km떨어져있어서 자동차로도 1시간가량 소요된다.
하지만, 앙코르유적티켓에 이곳가격도 포함돼있는 만큼
가자가자 응응?

그래서 우리 기사님도 출발하기전 스타마트 옆 주유소에서 주유부터^^


내가 툭툭이를 타고있는 쑹이의 사진을 찍어주자
우리 기사님, 같이 앉아보라 한다. 자기가 찍어주겠다고.
네네~툭툭이는 이렇게 생겼다고요! ㅋㅋ

 

이제 달려보자~
툭툭이를 타고 가니, 에어콘 바람이 아닌 자연바람을 맞을 수 있어
훨씬 덜 답답하고 시원상쾌했다.
주변을 휘휘 구경할 수도 있고

 

반떼이 스레이 가는 길목에 위치한 왕족의 야외목욕장인 스라스랑.
그 전날 갔던 곳이다.
스라스랑은 가로 700미터, 세로 300미터의 면적에 만들어진 목욕장이다.
마치 호수를 방불케하는 규모!


원나라 사신이었던 주달관이 캄보디아를 보고 쓴 <진랍풍토기>에
스라스랑을 묘사한 구절이 있다.

"강변에는 항상 목욕하는 여인이 수천명을 웃돈다
그 가운데엔 고위관리의 부인들도 있는데,
이를 보려고 몰려든 구경꾼에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몸이 노출되어도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축제와도 같은 목욕장면은 이제 아득한 옛일이 되고 말았다.
이제 스라스랑은 왕족의 목욕장 대신 앙코르 유적의 경관을 돋보이게 만드는 하나의 호수로서 기능하고 있으니 말이다.



스라스랑을 지나니, '쁘레 럽'이 보인다.
이곳도 앙코르 근교에서 가장 인기좋은 일몰명소인데...
시간이 없어 못갔음;;
대신 이렇게 스쳐지나가며 잠깐 보는 것으로 만족.
 


 

라젠드라바르만 2세가 건립한 '쁘레 럽'은
'몸을 뒤집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쁘레 럽' 사원이 일찍이 왕족의 화장터로 사용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한다.


몸을 뒤집다...이것은 캄보디아의 전통 화장방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시체주변에 숱을 흩뿌리고 한방향으로 태운뒤에 다른 방향으로 뒤집어 태우는 방식이 그것이다.



와~ 이제 '쁘레 럽'이 제대로 보인다.
오늘 저녁에 출국하기 땜에'쁘레 럽'에서의 일몰은 볼래야 볼 수 없는 처지.
아쉬워라


'쁘레 럽' 주변의 풍경이다.
논두렁을 바라보며 맞이하는 해넘이 굉장히 멋있을 듯 싶다.


수상가옥도 봤다.
저렇게 기둥 몇개를 이용해 붕 떠있는 집.
벌레와 바닥에 습기가 침범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드디어 도착했다.
쭘 리업 쑤어! 반떼이 스레이~

반떼이 스레이는 붉은 사암과 라테라이트을 깎아 만든
앙코르 유적 가운데 가장 작은 건축물에 속한다.
하지만 규모의 열세를 작품의 질로 완벽하게 보완했다.
너무나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들
'여성의 성채'라고 이름붙여질만 하다.

 


반떼이 스레이는 왕이 아닌, 하르샤바르만2세(942~944)의 손자이자 쉬바를 숭배하는 승려였던 야즈나바라하와
비쉬누를 숭배하는 그의 동생 비쉬누 꾸마르에 의해서 건설됐다.
왕처럼 큰규모로는 건축할 수 없기에 규모는 작지만 화려함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곳은 반떼이 스레이의 입구인 동쪽 프론톤(제4프론톤).
왕이 지은 사원에는 왕을 상징하는 사자와 가루다가 조각되지만, 신하가 지은 대부분의 사원에서는 상징동물상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사원이 출입구 위에 탑이 있는 고푸라(탑문)으로 조성되지만,
이곳에는 고푸라 대신 프론톤(건축물 꼭대기의 장식)으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잘 안보이겠지만 ㅡ.,ㅡ 자세히 보면 머리가 3개 달린 코끼리 아이라바타를 타고 있는 인드라 신의 조각이 보인다.
이 프론톤은 삼각형으로 만들어져 마치 불길이 타오르는 화염문의 형태를 취했는데
삼각형 윗면에는 홈이 파여있고 유난히 두꺼운 사암으로 조성되어 있어 또다른 장식이 외곽을 장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다.


첫번째 출입문(동쪽 프론톤)을 통과하면 전면에 이렇게 넓은 참배길이 펼쳐진다.
일명 사원의 참배길(출입로).
중앙 바닥에는 라테라이트(홍토벽돌)로 포장을 하면서 높이를 높였고,
 그 양쪽으로는 모두 32개의 링가(쉬바 신을 상징하는 형상으로 남근모양)를 조성했다.
두줄의 링가 맨끝으로 외벽의 고푸라가 보이게 해 종교적 신성공간임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진입로의 양쪽으로 사암기둥들이 남아있는 점이다.
기둥들의 뒤에는 라테라이트로 조성한 벽채가 있는 점으로 보아
진입로를 향해 열려있는 회랑의 형식을 취한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참배로 양쪽에 있는 부속건물.
순례자들을 위한 방이었거나 사원에서 근무하던 이들의 거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참배로를 지나면 외벽 고푸라와 해자가 있다.
중간 고푸라 내부에 대형요니(여근상)가 있었다.
링가를 올려놓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해자를 건너면 중앙성소에 들어선다.
중앙성소의 외벽부터 통과해야 하는데 바로 정면에 보이는 것이 사진속의 프론톤이다.

이곳이 중앙성소의 외벽고푸라(제2프론톤).
 


마치 오색천을 양쪽으로 드리운 것 같은 형태다.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진 형태에 단순함을 지니고 있어 프론톤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프론톤의 중간공간에는 연잎장식을 조각해 공간을 마무리하면서 종교적인 권위를 나타내고 있다.
 

 

중앙성소 외벽의 다른 입구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이런 포즈로 사진 찍으려고 사람들 엄청 대기했다는 ㅋ



내 사진 찍어주느라 쑹이가 거의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을 딱하게 여긴 지나가던 외국인 아줌마가
자청해서 우리커플 사진을 찍어주었다.
ㅎㅎ 아꾼(감사합니다)!!

정말 화려하다. 외벽을 빈틈없이 조각으로 장식해 석조건축물이 주는 딱딱함을 극복하고 있는 모습^^


 


외벽고푸라를 통과하면 중앙성소의 내벽(제1프론톤)에 다다른다.
중앙성소 내벽의 고푸라. 담은 무너지고 고푸라만 남았다.


여기는 내벽안 서쪽 고푸라.
프론톤을 장식한 원숭이가 눈에 띈다.



내벽을 통과하면 양옆에 중앙성소의 도서관이 있다.
뒷편 가운데 건물이 남쪽 도서관.
오른쪽에 있는 것이 중앙성소의 북쪽도서관.


중앙성소의 북쪽도서관. 그 자체가 완벽한 조각작품이다.
외부는 나뭇잎 형태로 불규칙하게 돌출시키며 장식했는데,
뒤쪽 위로 더 크게 조성된 프론톤은 마카라(인도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어)의 몸으로 여러차례 곡선을 이루면서 넓혔다.
 이 나뭇잎의 형태가 화염문 형태를 만들면서 건물 전체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게 한다.



북쪽도서관 프론톤의 끝선을 장식한 나가.
마카라의 벌린 입에서 머리가 5개 달린 나가가 나온 형태다.



도서관을 지나면, 반떼이 스레이의 하이라이트,
3개의 성소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중앙성전과 남쪽성전은 쉬바신에게, 나머지 북쪽 성전은 비쉬누신에게 바쳐진 것인데
이렇게 두신에게 바쳐진 것은 앞서 얘기했듯이
이 사원을 건립한 형제가 각각 다른 신을 신봉했기 때문이다.

 


중앙성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출입문을 지키고 있는 수문장들의 모습이다.
가운데 중앙성전 앙쪽에는 남성문지기인 드바라팔라가 창을 들고 한발을 앞으로 내밀고 삐딱하게 서있다.
(사진에서는 왼쪽 건물에 서있다. 줌인해서 찍은터라;;)
신체의 선이 유려해 강인함과 더불어 여성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세련되게 조성된 모습이지만
아무래도 남자 수문장이라, 정면의 참배객을 직접 바라보는 포즈가 조금 위협적이다.

 

반면 중앙신전 양옆에 있는 탑에는 여성문지기인 데바타를 조성했다.
(사진에서는 오른쪽 기둥 양쪽에 있다)

붉은색사암으로 벽감안에 조성한 데바타는 풍만한 몸매를 지녔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았고
곡선미가 강조되었지만 신체의 균형을 잃지 않은 모습이다.
하체에는 치마를 입었는데 천의 두께를 얇게 표현하면서 주름을 넣어 다리의 윤곽을 살려서 답답함이 없고
허리에는 장신구로 가득찬 띠를 하였지만 무거워보이지 않는다.
허리띠 위에는 배꼽을 가리는 천으로 마무리를 했는데
그 모습이 정교해 마치 실제로 천으로 묶어 끝자락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장식도 곱슬머리를 땋아 뒤로 넘겨 얼굴을 강조했으며 귀밑으로 긴 장신구를 드리웠다.
얼굴은 둥근 형태에 볼은 통통하며 입술은 두텁고 길이가 짧고 시선은 안쪽으로 살짝 돌린 모습이다


'동양의 모나리자'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데바타.
후일 프랑스 정부의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소설가 앙드레 말로도 데바타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사실, 반떼이 스레이가 유명해진 것은 앙드레 말로의 스캔들 덕분이 크다.

앙드레 말로가 앙코르 유적에 처음 도착한 것은 1923년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예술작품에 대한 안목이 남달랐던 그는 반티스레이 여신상을 보는 순간, 그 가치를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이윽고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치명적인 오점이자 추문으로 기록된 밀반출을 시도하다가
문화재 불법 반출 혐의로 체포당하기에 이르고 만다.


프랑스 사교계를 뒤흔든 그 재판에서 앙드레 말로는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압수된 유품은 국가로 귀속되었다.
몇년 후 그는 장편소설 <왕도의 길>을 발표했는데
앙드레 말로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그 소설이
반떼이 스레이 여신상의 밀반출 사건을 토대로 쓴 것임을 고백한 바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기단에 있는 반인반수 형상의 수문장이다.
수문장은 각각의 다른 동물의 얼굴에 인간의 몸을 한 모습이다.
중앙성소의 각 입구에는 원숭이 머리, 새머리, 사자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진 석상이
한쪽 무릎을 꿇고 존경심을 표하는 모습으로 조성돼 있는데
색이 눈에 띌 정도로 달라 최근에 조성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알고보니 진품은 모두 국립박물관으로 이전해 보호하고 있어 지금 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복제품이라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바닥에 아무렇게나 깨져있던 석상하나.
뭘 조각해놨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파괴되어 있었다.
이것도 복제해서 남겨둬햐 하지 않나. 
진품은 빨리 복원해서 박물관으로 옮겨놓든지 하고...
안타까운 마음 한가득이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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