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가문 중 하나인 합스부르크 왕가(Habsburg Haus).
오스트리아에 왔으니, 이 합스부르크의 영광과 쇠락을 볼 수 있는 그들의 겨울궁전, 호프부르크(Hofburg)를 안보고 지나칠 수 없었다.
호프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이 살았으며 오스트리아제국의 황제, 나중에는 오스트로-헝가리제국의 황제들이 살았던 곳으로, 1755년 마리 앙뚜아네트가 태어난 곳이 이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연방대통령의 공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1220년에 세워진 최초의 성관을 중심으로 역대의 군주들이 차례로 증축해왔기에 현재는 각기 서로 다른 양식의 건물 집합체가 되었다고 한다.

일단 나는 미하엘러토르(미하엘 문)을 거쳐 오늘날 인 데아 부르크(in der Burg. 왕궁내부)라고 불리는 궁전의 구내를 살펴보기로 했다.
사진은 구왕궁(Alte Burg)의 왕궁정원. 한가운데에는 프란츠 1세(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는 Francis 2세이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로서는 프란츠 1세)상이 서있다. 폼페오 마르케시(Pompeo Marchesi)의 작품이라 한다.

동상뒤에 있는 건물은 아말리엔부르크(Amalaienburg 아말리아궁). 지붕위에 작은 돔이 있는 탑이있고 천문시계설치가 되어있는 후기 르네상스양식 건물이다. 요셉1세(재위 1705-1711)가 세상을 떠난 후 미망인이 된 아말리 빌헬미네(Amalie Wilhemine)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저곳에 황제의 아파트먼트가 있다. 그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챈설러리 윙. 황제의 아파트먼트 일부와 궁정 은식기 컬렉션이 있는 곳이다.


왕궁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쑹과 나는 제일 하이라이트라고 손꼽히는 구왕궁만 관람하기로 했다. 구왕궁에 들어가면 호프부르크 황실아파트(Kaiserappartements), 시시 기념관, 질버카머(Silberkammer, 영어로는 Silver Collection)를 관람할 수 있는 안내소 겸 매표소가 있다. 총 € 9,90. 오디오가이드 포함가격이지만, 한국어 서비스는 없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사진을 못찍게 되어 있어서 아쉽다. 이곳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어서 정말 흥미진진했는데 말이다. 잠깐 소개하자면^^


이 사람이 합스부르크 제국 프란츠 요제프 황제(1830~1916)다. 사실상 마지막 황제라고 할 수 있겠다.
호프부르크의 황실아파트는 이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트(일명 시시 sisi)황후가 거주했던 곳으로 과거 찬란했던 제국에 대한 향수(오스트리아 인들에겐^^)를 불러일으켜 주는 곳이다.

구왕궁의 챈설러리 윙과 아멜리엔부르크의 2층에 걸쳐서 약 15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황실 아파트를 관람하다보면 화려했던 합스부르크역사와 시시 왕비의 애잔했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인들은 시시 왕비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듯 보였다. 빈시내 어디를 가도 찾아볼 수 있었던 시시 초상화를 봐도 말이다.
호프부르크에는 아예 1998년 씨씨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황실아파트의 방 하나에 시시기념관을 조성해서,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시시황후의 1867년 사진이다.
시시황후(Empress Elizabeth, Elisabeth of Bavaria, 1837~1898)의 일생은 드라마틱했다.
독일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공작 가문의 둘째딸로 태어나, 어릴때부터 시시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자유분방하게 자랄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저 평범한 귀족의 딸이었다.
그런데, 15세때 오스트리아 황후후보였던 언니 헬레나가 선을 보는 자리에 동행하면서 일생이 바뀌게 된다. 엘리자베트를 보고 프란츠 요제프는 첫눈에 반해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언니 대신에 황후가 되어 16세의 나이에 궁정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일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제국이 저물어가는 시기,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그저 편안한 일생만 보냈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그 정점을 이룬 사건이 1889년 1월 30일에 외아들인 루돌프가 자살한 것. 제위계승자였던 루돌프는 빈 남쪽 교외인 마이어링에서 애인 마리 베체라와 권총 자살을 했다. 이후 그녀는 검은 상복을 죽을 때까지 벗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 1898년 9월 10일에는 시시 그 자신도 여행지였던 제네바 레만 호수가에서 베에 올라타던 중 이탈리아의 한 무정부주의자의 손에 암살당하고 만다.


그 암살자 Luigi Lucheni의 모습이다.
시시 박물관에는 암살흉기였던 줄칼도 전시돼 있었고 시시의 데드마스크도 볼 수 있었다. 시시의 평소 자랑거리였던 긴머리도 전시돼있다.


황제의 아파트와 시시 박물관 외에 또 볼거리는 질버캄머(궁정 은식기 컬렉션).
황제와 왕비가 사용하던 은제식기류 등 화려한 물건들이 아름답게 전시돼있다. 


궁정은식기컬력션은 합스부르크가의 역대식기 컬렉션으로, 도자기와 은식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특히 도자기는 유럽의 유명제조공장에서 최고의 기술로 제조된 여러 종류의 디너세트와 티세트가 전시되어있다. 은식기 중에는 프란츠요제프 황제때 사용되었던 것이 많이 있다고.


사실 나야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아주 질리도록 이런 황실 도자기를 본터라, 별로 신기할 것도 없었지만
우리 쑹은 내내 "이야~"감탄하면서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불법인 것 같았는데^^;)
나도 위에 있는 저 나무결 도자기는 조금 신기하긴 했다만ㅎㅎ


그 중 제일 볼만했던 건 19세기 초 밀라노에서 제작된 33m나 되는 금도금의 대형쟁반이었다. 황실의 만찬에 실제 사용된 식기라고.
 
사실, 황제와 함께하는 황실의 만찬은 영광이지만 실제로 초청받은 사람들은 황제와의 만찬을 꺼려했다고 한다. 
왜일까? 프란츠 요세프 황제는 소식가이기도 했지만 음식을 상당히 빨리 먹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공직에 매인 사람은 식사를 늦게 할 수 없다는 습관이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식사든지 황제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음식을 서브받을 터. 
때문에 빨리, 조금 먹는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일찍 식사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마지막 사람이 음식을 서브받을 때쯤이면 황제는 이미 식사를 끝낸 입장이었을 것이다.


엄격하기가 그지 없는 황실의 법도에 따르면, 황제가 포크와 나이프를 식탁에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함께 식사하던 다른 모든 사람들도 즉시 식사를 끝내야 했다.
따라서 황제의 만찬에 초대받았던 사람들은 배가 몹시 고픈채 만찬장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그 맛있고 비싼 음식을 놔둔채 돌아서야 했던 귀족들의 피눈물(?)이 상상되어서 재미있었다.
호프부르크에서 나온 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근처 자허호텔에 가서 근사한 음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말이다ㅋㅋ


이 호화판을 보라. 얼마나 금이 남아돌았으면..금으로 식기까지 만들 정도였으니 ...쯧쯧.
평생 금을 보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들도, 그 당시 참 많았을텐데...


본 차이나(bone china)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서양의 도자기하면 중국의 영향을 꼭 고려해야 할 듯.


이런 식의 도자기가 정말 너무너무 많다는! 시간에 쫓겨서 제대로 다 못본 게 아쉽다.
그 와중에 쑹과 나의 불법 인증샷도 찍고 ㅋㅋ


구왕궁을 다 본 다음에는 스위스문을 통해 신왕궁 쪽으로 향했다.
신왕궁에는 고대악기박물관, 무기갑옷박물관, 민속박물관, 파피루스박물관, 에베소유적박물관 등이 들어서있는데, 다 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시 호프부르크에 있는 국립도서관이라도 가고자했으나...절차가 복잡한 것 같아서 시간상 포기.
신왕궁 안에서 바깥을 찍은 모습이다. 정문의 철세공이 아름다워서 찍어봤다^^



얘네들 철세공은 정말 예술이라는 느낌이 팍팍 든다.  굵기도 다르고 하나하나 굴곡지게 만든 장식하며...
뒤에 보이는 네오바로크식 양식의 건물과 참 잘 조화가 되는 것 같다.


신왕궁과 정원을 구경하기 앞서 잠시 휴식타임때.
우리 쑹 뒷모습 도촬 ^^


쑹과 내가 있었던 신왕궁(Neue Burg)의 외관이다.
합스부르크가의 권위를 상징하듯 머리가 2개인 독수리가 정면 위쪽에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1881년부터 1916년까지 주로 카를 폰 하제나우어(Carl von Hasenauer)와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신왕궁 밖으로 나오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헬덴(영웅)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누워서 일광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신기했던 건, 이 한가운데에서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바자회같은 게 열리고 있었다는 것.
우리나라나, 오스트리아나 참... 알록달록한 임시조형물 세워놓고 부스 만들어놓고 행사 벌이는 것은 똑같구나..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저기 멀리 보이는 왼쪽 돔건물은 미술사박물관, 오른쪽 돔은 자연사박물관이다.
미술사 박물관은 반나절을 투자하고도 대충(?) 볼만큼 어마어마하고도 유명한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다. 다음호에 소개예정^^;
자연사 박물관은 일정상 건너뛸 수밖에 없었다.

헬덴 광장 한 가운데 있는 것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오스트리아의 영웅, 카를대공 기마상이다.
조각가 훼른코른(Fernkorn)의 작품인데, 말 뒷발의 두 발목으로서만 육중한 조형물 지탱하고 있어서 유명한 기마상이라고. 정말 엄청난 균형감각 아닌가.


카를대공 기마상 바로 건너편에는 오이겐 공작 기마상이 있는데 이 역시 훼른코른의 작품이다.
오이겐 공작에 대한 설명은 [9]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곳, 벨베데레 궁전! 편을 참고하시고^^;

여하튼 훼른코른은 오이겐 공작 기마상을 카를대공의 기마상처럼 뒤 두발로만 지탱할 수 있도록 조각해보려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오이겐 공의 기마상은 말의 두뒷발과 꼬리로 전체를 지탱하고 있다.
훼른코른은 그 죄책감에 나중에 정신이상에 걸렸다고 한다;; 뭐...그렇게까지 -_-



다소 어수선했던 헬덴 광장에서 인증샷도 찍었다 ㅎㅎ 80년대 포즈로 말이다^^;;(오른쪽에 널브러져있는 사람이 이 사진의 분위기를 더욱 묘하게 해준다 ㅋㅋㅋ)

이렇게 웃기고 키치적인 모습으로 찍혔지만, 사실 헬덴광장은 역사적으로도 꽤나 유명한 곳이다.
1938년 저 뒷편에 보이는 신왕궁 2층 테라스에서 히틀러가 등장해, 30만명의 인파 앞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왕궁에 왕궁정원(부르크가르텐, Burggarten)이 없으면 이상하다.
역시나 신왕궁 뒷편에 거대한 정원이 있었다. 왼편에 보이는 건물은 아까 봤던 신왕궁의 뒷모습이다.


왕궁정원은 호프부르크에 연결된 궁정정원으로서 왕족이나 귀족들의 전용이었으나 요셉2세 황제 이후부터 일반에게 공개됐다고 한다.
 

왕궁정원이 유명한 건, 바로 이 모차르트 동상 때문이다. 센스 있게 동상 앞에는 꽃으로 만든 높은음자리표가 조성돼있었다.
이곳말고도 호프부르크에는 시민정원도 있는데... 아, 모자란 시간이 웬수였다.

호프부르크의 영어판 홈페이지는 http://www.hofburg-wien.a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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